내용 요약
다동기생조합은 1913년에 서울 다동에 설립된 기생조합이다. 서도 출신 기생들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남편 없는 기생들의 조합이라는 뜻의 ‘무부기조합’으로 불렸다. 1914년 이후 전격적인 공연 활동을 펼쳤는데 민간 가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또 금녀의 영역이었던 연희 종목을 수용하기도 했고 당시 새로운 영역이던 여성 창극에도 도전했으며 진취적으로 창작 궁중무용 및 서양춤에도 도전했다. 조합은 타지역 출신 기생들이 서울에서 집단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여성의 다양한 공연 종목을 개척함으로써 한국 근대 공연예술사에 기여했다.
정의
1913년에 서울 다동에 설립된 기생조합.
개설
다동조합 설립에는 서도 출신 기생들이 중심에 있었지만 실력 있는 남도 출신 기생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동조합을 서도 출신 기생들의 조합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동조합의 설립 명분을 주도한 것이 서도 출신 기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서도 출신 기생들은 다동 조합 설립 전에는 지방기생들의 서울 정착을 주도하고 조직 내의 주도권을 쥐었지만, 조합 설립 이후에는 남도출신 기생과 지도력을 경쟁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실제로 무부기라는 명분이 해체될 무렵 다동기생조합은 조합내의 경쟁 관계 때문에 분열되었다.
설립목적
서도 출신 기생들은 자신의 기예의 성립과 관련된 지역성을 뒤로하고 서울 출신 기생 조직에 조용히 합류하기도 했지만, 1910년 초부터는 자신의 출신과 가무의 정체를 전면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때 이들이 주목한 것이 당시의 기생제도였다. 당시의 제도는 기부(妓夫)가 있는 경우 기생이 될 수 없었다. 기부는 실제 혼인관계에 있는 남편이 아니라 기생의 후원자를 지칭했는데, 20세기 이후부터 경시청은 기부가 있는 자는 기생이 될 수 없도록 강제했다. 그러나 기부는 서울 출신 기생들의 오랜 전통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서울 출신기생들은 경시청의 강제에 저항했다. 이와는 반대로 서도 출신기생들은 1913년에 기부가 없는 기생임을 자처하고, 나아가 무부기(無夫妓)를 명분으로 세움으로써 타지역 출신 기생들의 서울 정착에 기여했다. 당시 무부기 주장은 “기생계의 혁명”이라고 불렸다. 기생계의 혁명을 주도한 인물 중 대표적인 기생이 주산월이다.
연원 및 변천
기능과 역할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근대음악사회사』(권도희, 민속원, 2012)
- 「기생의 가창활동을 통한 근대에의 대응」 (권도희,『한국시가연구』32집, 2012)
- 「20세기 전반기 극장 연희의 종목과 그 특징」(권도희,『한국음악연구』47집, 2010)
- 「20세기 기생의 가무와 조직」(권도희, 『한국음악연구』45집, 2009)
- 「20세기 관기와 삼패」(권도희, 『여성문학연구』16집, 2006)
- 「경성의 화류계」(일기자,『개벽』48호, 1924)
- 「경성의 요리점과 기생」(풍류생, 『반도시론』19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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