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는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이일이 함경도 지역을 침략하던 여진족 시전부락을 소탕하는 광경을 담은 기록화이다. 이일(1538∼1601)은 조선 중기 무신으로 장양은 그의 시호이다. 그림의 크기는 세로 142.8㎝, 가로 102.0㎝이며 17세기의 원본을 1849년에 이모하였다. 화면은 상단에 전서체로 쓴 제목이 있고 중앙부는 전투 장면을 담은 그림으로 채워졌으며 하단에 좌목이 딸린 계축 형식이다. 붉은색 선으로 이 세부분을 구획하였다. 조선시대 전쟁기록화가 드물고 제작 내력까지 파악할 수 있어 가치가 높다.
정의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이일이 함경도 지역을 침략하던 여진족 시전부락을 소탕하는 광경을 담은 기록화.
구성 및 형식
내용
발문의 내용에 따르면, 원래 장양공 이일의 손자인 경상좌수사 이견(李汧, 1618∼?)이 조부의 공훈을 기념하고 후세에 알리고자 3점의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를 제작해 집안에 보관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한 건밖에 남지 않게 되자 1849년(헌종 15)에 다시 3점을 제작해 예전과 같이 나누어 가장(家藏)했다는 것이다. 화면은 전형적인 계축 형식이지만 일반적인 계회도가 아니라 조상의 행적을 기리는 목적으로 제작한 기록화이다.
이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는 전투 장면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특이한 사례이다. 여진족 시전부락 일대의 넓은 지역을 부감시(俯瞰視)로 조망하고, 장양공의 부대와 여진족 사이에 벌어진 전투 상황을 화면 가득 담았다. 지형도식 묘법으로 지형지세의 틀을 잡았는데, 산봉우리는 먹선으로 윤곽을 그린 다음 안쪽에 호초점(胡椒點)을 찍어 질감을 나타냈다. 또 아래쪽 근경의 산봉과 능선에 화보풍(畵譜風) 수목들을 배치해 상부의 원경과 구별하였다. 즉 17세기의 산수화법과 지형도식 표현이 혼재된 상태이다. 전투에 참여한 양측 군사들의 인물묘법이 기계적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자세로 묘사함으로써 치열한 전장의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1849년(헌종 15) 이모 당시의 화단에서 유행하던 화풍과 거리가 있는데, 원본의 양식을 충실히 옮긴 탓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 연구」(이재호,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
- 「소당 이재관의 회화 연구」(김소영, 전남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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