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흥해향교 대성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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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흥해향교 대성전
흥해향교 대성전
건축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향교 내에에 있는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문묘.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포항 흥해향교 대성전(浦項 興海鄕校 大成殿)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지정기관
경상북도
종목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유산(2012년 10월 22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동해대로1530번길 1-3 (흥해읍, 흥해향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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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향교 내에에 있는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문묘.
개설

흥해향교 대성전(興海鄕校大成殿)은 공자와 제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행하는 흥해향교의 중심 건물이다. 조선 초기 흥해향교의 창건과 함께 건축한 것으로 전하며, 1776년(정조 즉위)에 중수한 기록이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에 측면 3칸이고, 5량가에 지붕은 맞배에 기와를 얹었으며, 포작은 출목 2익공이다. 지금의 대성전은 1985년에 중수한 것으로 같은 해 8월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되었다가 2012년 10월 22일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승격 지정되었다. 이후 포항지역에 발생한 지진(2017.11.12, 규모 5.4) 당시 대성전 벽체 일부가 파손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으며, 2018년 복구되었다.

내용

흥해향교 건립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1398년(태조 7)에 지었다고 전한다. 그 위치에 관해서는『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고을 서쪽 1리에 있다’라는 내용과 영조 연간(1736년∼1767년 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輿地圖)』「흥해군」지도에 흥해읍성 남문 밖 서쪽에 그려져 있는 것을 통해 지금의 위치와 동일했음을 알 수 있다.

대성전에는 오성(五聖), 송조 이현(宋朝二賢), 우리나라 십팔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가 실시됨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건물은 향교 초창 시에 함께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몇 차례 중수가 이루어졌다. 흥해향교에 전해져 내려오는 『석전의궤』에는 1776년(정조 즉위) 12월 24일의 「대성전중수시고유문」과 이듬해 3월 21일의 「환안고유문」이 실려 있는데, 이를 통해 보면 1776년(정조 즉위) 대성전이 퇴락하여 중수 공사를 시작하고 1777년(정조 1) 3월에 완공하여 3월 21일 대성전에 위패를 다시 모셨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기와를 새로 올리거나 단청을 새롭게 하는 등의 소소한 수리가 있었지만 1985년까지 유지되었다. 특히 한국전쟁 때 흥해향교의 여러 건물이 소실된 상황에서도 대성전만은 피해를 면했다. 그러나 지금의 건물 모습은 1985년에 중수한 것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에 측면 3칸 규모의 건물이다. 자연석 2단을 바른층쌓기한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형기둥을 세워 5량가를 짜 올린 후, 그 위에 겹처마 맞배 기와지붕을 올렸다. 지붕의 양측면은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풍판을 시설하였다. 대성전의 포작 형식은 주심도리 밖으로 외목도리를 배치하고 출목익공으로 받쳐주는 출목 2익공을 구성하였는데, 이는 17세기 후반부터 등장하는 익공 형식이다.

건물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공간을 넓게 활용하기 위하여 기둥없이 어칸(御間)의 정면 기둥으로부터 후면 기둥까지 긴 대들보를 올렸다. 대들보의 3등분 지점에 당초문양을 조각한 화반동자주를 올려 중도리를 받도록 했으며, 종보 위에도 당초 문양의 파련대공을 올려 종도리를 받도록 했다.

건물 정면에는 각 칸마다 쌍여닫이 울거미 널문을 달았는데, 널은 통재를 사용하였다. 정면에 창호가 폐쇄적이므로, 측면부 풍판 안쪽으로 통풍을 위한 고창을 설치하였다.

특징

대성전의 내부 공간을 넓게 확보하기 위하여 어칸에는 큰 대들보를 사용하고 기둥을 생략하였다. 반면 양측 벽은 3칸으로 구성하고 어칸에 고주를 배치한 후 협칸에 퇴보를 올려 고주에 결구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대성전의 체목(體木)이 약소한 것과는 달리 익공 · 보머리 · 동자주 · 대공 등에는 조각을 화려하게 하여 목재의 부족함을 대신하려 했다.

참고문헌

『경상북도의 향교건축』(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국가유산청(www.khs.go.kr)
규장각한국학연구원(e-kyujangg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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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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