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사는 정인걸(丁仁傑), 정경달(丁景達), 정명열(丁鳴說), 정남일(丁南一) 네 사람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李舜臣), 임영립(林英立)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영광 정씨 문중이 건립한 사우(祠宇)다. 1714년(숙종 40)에 향사(鄕祠)로 창건되었으나,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32년에 복원되었다. 그 후 1957년 강당인 효우당(孝友堂)을 새로 짓고, 1962년에 신실(神室)을 중건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원촌마을에 위치한 반계사는 1714년(숙종 40)에 영광 정씨 문중이 주도적으로 건립한 향사(鄕祠)로, ‘반계서원’이라고도 불린다. 1868(고종 5)에 서월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32년 이후 복원되었으므로, 배치 및 건물의 원형은 알 수 없다. 현재의 건물과 배치는 1957년 이후의 것들로, 조선시대의 일반 향사와는 배치에 차이가 있다.
반계사는 강당 영역과 사당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강당 영역으로의 진입은 숙장문(肅將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소슬삼문을 통해 가능하다. 이 영역에는 강당인 효우당과 재실(齋室)인 모선재(慕先齊)가 자리하고 있다. 효우당 뒤쪽에는 석축을 쌓아 주변에 담장을 두른 사당 영역이 자리하고 있다. 사당인 반계사로 진입하기 위한 내삼문에는 충의문(忠義門)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신위를 모시는 반계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내부 및 전면퇴에 마루를 시설하고, 창호는 전면에만 세살청판분합을 설치했다. 기둥 상부는 이익공으로 장식했으며, 길게 내민 처마를 안정적으로 받치기 위하여 네 모서리에 활주를 설치했다.
반계사에는 정경달의 『난중일기(亂中日記)』, 「광군공신계회도」 및 관복유품 흉배 2매와 1591년(선조 24)의 「광국원종공신녹권」 1책, 1603년(선조 36)에 발행된 「선무원종공신녹권」 1책 등 5종 8점이 전해져 내려왔다. 이 유물일괄은 1988년 12월 21일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 반계사에는 1760년(영조 36)의 「호남갑자막의록」과 「불갑사간」1책, 교지 등 다수의 고문서 자료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