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이회(而晦), 호는 반곡(盤谷). 아버지는 정몽응(丁夢鷹)이다.
1570년(선조 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산군수로서 의병을 모으고 관찰사 김성일(金誠一), 병마절도사 조대곤(曺大坤)과 함께 기략(奇略)을 써서 적을 금오산(金烏山) 아래에서 대파하였다.
1594년에는 당시 수군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계청(啓請)으로 그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었다. 이때 세운 전공이 책록되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진하였다.
한때 이순신이 원균(元均)의 모함으로 투옥되었을 때 조정에 나아가 왕에게 “이순신의 애국심과 적을 방어하는 재주는 일찍이 그 예를 찾을 수 없습니다. 전쟁에 나가 싸움을 미루는 것은 병가의 승책(勝策)인데 어찌 적세를 살피고 싸움을 주저한다 하여 죄로 돌릴 수 있겠습니까. 왕께서 이 사람을 죽이면 나라가 망하겠으니 어찌하겠습니까” 하고 이순신의 석방을 강력히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