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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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유적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고려후기 승려 나옹화상이 창건한 사찰. 불교건축.
이칭
이칭
복천암, 해운암, 海雲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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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고려후기 승려 나옹화상이 창건한 사찰. 불교건축.
내용

복천사는 부산 영도구 신선동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위치한 사찰로, 고려 말 나옹 화상(懶翁和尙)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시대 복천사의 명칭은 '해운암(海雲庵)'이라 불렸지만, 그 창건 시기 및 유래에 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부산의 영도는 조선시대에 '절영도(絶影島)'라는 지명으로 불리던 곳으로, 풍토가 척박하고 왜적의 침입이 잦아 마을을 폐쇄하고 목마장(牧馬場)이 운영되던 곳이다. 목마장이 운영되던 시기에도 복천사가 이곳에 여전히 존치했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1800년대에 직지사(直指寺)의 승려였던 김선주(金善住)가 옛 명맥을 찾아 토굴을 만들어 수행하면서 다시 승려들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복천사의 명칭은 1921년 부산과 영남 지역 전통불교미술의 대불모(大佛母)로 칭송받았던 양완호 화상이 주변 계곡의 물이 좋다고 ‘복천암(福泉庵)’이라 이름 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전통불교미술의 계승 발전을 위해 불화소(佛畵所)를 운영하면서 대웅전을 중창했고, 이후 1953년 그의 제자인 승려 임영주가 다른 건물들과 함께 대웅전을 다시 한 번 중창하였다.

복천암이 조계종 복천사로 이름을 바꾸게 된 때는 1973년 월공당(月空堂) 도해(道海)가 주지로 주석하면서다. 사찰의 이름을 바꾼 월공당은 명부전, 칠성각, 산신각, 용왕단, 3층의 요사(설선당), 종각, 주지실 등의 불사를 진행해서 사찰의 규모를 키웠다. 이로써 복천사는 2008년에 전통사찰 제31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2011년 여름 폭우로 사찰 뒤쪽의 산이 무너져 내리면서 명부전, 산신각, 칠성각이 파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각 내에 있던 지장시왕상 등도 완파되어 수리를 하게 되었다. 지금의 복천사는 당시의 피해를 모두 복구하고 면모를 일신한 상태다.

복구된 상태의 복천사에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인 지장시왕도, 복천사 아미타극락회상도, 복천사 조상경, 선원제전집도서, 복천사 석각영산회상도, 복천사 독성도 및 복장유물 일괄, 복천사 현왕도 및 복장유물 일괄 7건과 비지정 문화재 70여 장이 소장되어 있다. 이때 유물이 다행히 수장고에 보관되어 피해를 입지 않았다. 지장시왕도와 아미타극락회상도 및 석각영산회상도는 2005년에, 조상경과 선원제전집도서는 2006년에, 독성도 및 복장유물 일괄, 현왕도 및 복장유물 일괄 7건은 2007년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금어 양완호의 예술세계와 영도 복천사」(문년순,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복천사 전통사찰지정 보도자료』(2008)
『법보신문』(2011)
복천사(bok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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