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전은 공자와 그 제자들을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행하는 영주향교(榮州鄕校)의 중심 건물이다. 영주향교는 1368년(공민왕 17)에 하륜이 창건하였고, 1433년(세종 15)에 군수 반저가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대성전은 1577년(선조 10)에 군수 이희득이 중수한 것을 원형으로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 건물은 1985년 8월 5일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 10월 22일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승격 지정되었다.
영주향교는 1368년(공민왕 17)에 당시의 군수인 지군(知郡) 하륜(河崙)이 창건하였고,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1433년(세종 15)에 군수 반저(潘渚)가 새롭게 중수하였다. 1577년(선조 10)에는 군수 이희득(李希得)이 대성전과 동 · 서재를 중수하였고, 1588년(선조 21)에는 군수 이대진이 동 · 서무를 새로 지으면서 명륜당을 이건(移建)하였으며, 1739년(영조 15)에는 명륜당이 중건되었다.
대성전은 1577년(선조 10)에 중수된 이후로 여러 차례 보수를 통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박승임(朴承任)의 「명륜당 중수기(明倫堂重修記)」에 따르면, 1577년(선조 10) 가을에 군수 이희득이 대성전 3간 5가(三間五架)를 지었다고 한다. 그 후로 몇 차례 향교가 중수되었고 1943년에 영주농업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영주향교의 건물들이 대다수 변형되었으나 대성전은 큰 변화 없이 지금에 이르렀다.
대성전의 규모는 정면 3칸에 측면 3칸으로, 장대석 3벌대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원형에 가깝게 다듬어 사용하였고, 그 위로 원기둥을 올렸다. 기둥머리는 초익공으로 구성하였는데, 익공 상부에 얹히는 보머리도 익공 형태로 조각하여 장식성을 높였다.
가구는 1고주 5량가로, 정면 내주열에 고주(高柱)를 배열하고 툇보를 걸어 정면 툇간을 형성하였다. 정면 툇간에는 벽체를 설치하지 않고 개방된 공간을 형성했다. 잘 다듬어진 대들보를 걸고 4등분 되는 지점에 동자주를 올려 중도리를 받게 했다. 종보 위에는 파련대공을 얹어 종도리를 받도록 했다. 맞배지붕이며, 지붕 전면은 부연을 달아 겹처마를 형성하였다. 측면에는 풍판을 달지 않아 건물의 가구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대성전의 창호는 정면 어칸에 4짝 세살문을 달아 출입 용도로 사용하였고, 좌우 협칸에는 만(卍)살광창을 설치하였다.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