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샌프란시스코한인연합감리교회는 1904년 샌프란시스코지역 한인들이 설립한 한인감리교회이다. 1904년 안창호 등 9명의 교포들이 교회 창립의 기초를 다졌으며, 1908년 미국 남감리교단의 승인으로 정식 교회가 되었다. 미주한인사회 내 첫 한글 발행 잡지인 월간 『대도(大道)』를 창간하였는데, 이 잡지는 신앙 증진은 물론 구국을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1910년 말 교회 내 대한소학교를 설립해 한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일 1시간씩 한글과 한국의 역사를 가르쳤다. 해방 이전 기독교 신앙 증진은 물론 민족운동과 민족의식을 고양하는데 앞장선 민족교회로 활동하였다.
정의
1904년 샌프란시스코지역 한인들이 설립한 한인감리교회.
연원 및 변천
1905년 당시 교인수는 55명을 헤아렸다. 그런데 1906년 미국 북감리교회가 선교정책을 조정하면서 한인교회의 활동이 중단되고 대신 남감리교회가 그 자리를 맡게 되었다. 그 해 7월 신학공부를 위해 양주삼이 샌프란시스코에 오자 남감리교회의 리드(C. F. Reid)목사가 양주삼을 중심으로 1906년 12월 16일 상항한인교회를 다시 설립하였는데, 설립 당시에 30여 명의 한인들이 출석하였다.
1908년 11월 1일 미국 남감리교단의 승인을 받아 정식 교회로 자리 잡았다. 첫 교회 건물은 캘리포니가(California Street) 2350번지에 있는 3층 개인주택을 임대해 사용하였다.
1907년 10월 부시가(Bush Street) 2123가로 이전한 후, 1908년 12월부터 양주삼의 주도로 월간 신앙잡지 『대도(大道, The Korean Evangel)』를 창간하였다. 『대도』는 당시 미주한인사회에 한글로 발행된 첫 잡지로 교회 활동 소식과 설교, 성경지식, 각종 시사 및 상식 등의 내용을 담았는데, 신앙 증진은 물론 구국을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1909년 6월 양주삼이 신학공부를 위해 미국 동부로 떠난 뒤 그 해 12월부터 윤병구가 교회를 맡았다. 윤병구는 1910년 11월 교회 내 대한소학교를 설립해 한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일 1시간씩 한글과 한국의 역사를 가르쳤다.
1911년 2월 1일 윤병구가 사임한 후 1928년까지 이대위가 목회를 담임하였고, 이후 황사선(1928∼1942), 김하태(1943∼1945), 임두화(1945∼1948), 양주은(1948∼1949)이 교회 목회를 담당하였다. 이후 교회를 담임한 목회자로는 안병주, 송정률, 차원태, 유석종, 박철수, 박한규, 김진호, 김택규, 박효원, 송계영이다. 이대위 목사시절인 1928년 교회 이전 신축을 단행해 1930년 6월 1일 포엘(Powell Street) 1123번지에 완공하였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공립신보』;『신한민보』
- 『잊혀진 미주한인사회의 대들보 이대위』(최기영, 역사공간, 2012)
- 『애국지사 이대위』(유석종 편, 북산책, 2010)
- 『샌프란시스코의 한인과 교회』(성백걸,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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