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려후기 몽골 침입 당시에 축조된 성곽. 산성.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조선 초에 고려 때의 내성을 축소하여 석성(石城)을 축성하였으니 지금의 강화산성이다. 그러나 강화산성은 1637년(인조 15)에 병자호란이 일어난 뒤 청나라 군사에 의해 다시 파괴되어, 1677년(숙종 3)에 강화유수 허질(許秩)이 고려 때의 내성 규모로 크게 고쳐 쌓았다. 1709년(숙종 35)에 강화유수 박권(朴權)이 중수한 뒤에도 조선 말기까지 계속 보수하였다. 이 때 성벽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성벽 위에 낮게 쌓은 여장(女墻)도 두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무너진 상태이다. 성 안에는 남장대(南將臺)·북장대(北將臺)·서장대(西將臺) 등의 장대와 2개의 수문이 있었다.
1970년대 시행된 강화전적지 정화사업을 통하여 1975년에는 남문 안파루(晏波樓), 1977년에 서문 첨화루(瞻華樓)와 북문 진송루(鎭松樓) 등을 복원하였고, 2003년에 동문 망한루(望漢樓)를 복원하였다.
특징
2000년대 들어 강화산성에 대한 학술연구조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강화산성 지표조사, 동문지 주변 지표조사, 남장대지 발굴조사, 북장대지 발굴조사 등이 이루어져 강화산성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 상당 부분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아직까지 강화산성의 초축 규모와 위치 등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강화산성 남장대지 유적』(강화군·한울문화재연구원, 2011)
- 『강화북장대지 발굴조사보고서』(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 『강화산성지표조사보고서』(강화군・인천시립박물관, 2007)
- 『강화산성 동문지 주변 도로개설구간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강화군·인하대학교박물관, 2002)
- 『강화군 군사유적 지표조사보고서(성곽·봉수편)』(육군박물관, 2000)
- 『강화도의 국방유적』(강화군·육군박물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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