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고려시대 몽골 침입 당기에 사용하던 궁궐터.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강화도에는 정궁 이외에도 행궁(行宮) · 이궁(離宮) · 가궐(假闕) 등 많은 궁궐이 있었는데, 이곳 강화읍 관청리 부근은 정궁이 있었던 터로 추정된다. 비록 규모는 작았으나 궁궐을 송도의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고 궁궐의 뒷산 이름도 송악(松岳)이라 하였다. 궁의 정문 이름은 승평문(昇平門)이었고, 양측에 삼층루의 문이 두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廣化門)이 있었다. 강화 고려궁은 1270년(원종 11)에 고려가 개경으로 환도할 때 모두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 1631년(인조 9)에 고려궁지에 행궁을 건립하여 국난시 이용하고자 하였다. 또한 강화유수부, 외규장각, 장녕전(萬寧殿), 만녕전(萬寧殿) 등을 세웠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하여 거의 소실되었다. 현재 조선시대 관아 건물인 명위헌(明威軒), 이방청(吏房廳) 등과 복원된 외규장각이 남아 있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고려 강화도성』(이희인, 혜안, 2016)
- 『강화 고려궁지 학술조사보고서』(강화군, 2003)
- 『강화 조선궁전지』(한림대학교, 2003)
- 『강화전사유적보수정화지』(문화재관리국, 1978)
- 「고려시대 강화의 궁궐과 관부」(김창현, 『국사관논총』 106, 국사편찬위원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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