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극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 동창학교와 북일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 경신참변에 의해 사망한 교육자 ·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8년(고종 5)
사망 연도
1920년
출생지
함경북도 명천
관련 사건
동창학교 설립
정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 동창학교와 북일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 경신참변에 의해 사망한 교육자 · 독립운동가.
개설

함경북도 명천 출신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중국 북간도 혼춘(琿春)을 근거로 활동하였다. 1909년에 유백초, 양하구, 김철수와 함께 기독교 계통의 동창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에 취임하였다. 1916년 12월에 동창학교에는 교장 김남극과 교사 2명이 학생 28명을 가르쳤는데, 1917년 1월에 김남극은 이동휘(李東輝, 1873∼1935), 양하구 등과 함께 북일학교(北一學校)를 창립하면서 동창학교 교사와 학생을 데리고 와서 부교장을 맡았다. 그 뒤 학생 40여 명을 데리고 대황구촌(大荒沟村)에서 서쪽으로 1㎞ 떨어진 산기슭에 목재로 8칸의 교사(校舍)를 짓고 교실 3개를 마련하였다. 김남극은 북일학교의 행정 사무를 도맡았는데, 1919년 4월에 교장 양하구가 일본 당국에 체포된 뒤에는 오영선(吳永善, 1886∼1939)이 제2대 교장을 맡았지만, 실질적으로 교장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1920년 10월 17일 경신참변(庚申慘變) 당시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1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불령단관계잡건-조선인의 부-재만주의 부(24)』(일본외무성사료관 소장문서)(국사편찬위원회)
『성재 이동휘 일대기』(반병률, 범우사, 1998)
「훈춘 북일학교의 건립과 독립운동」(장석흥,『한국학논총』31, 국민대한국학연구소, 2009)
「민국초기 왕청현 조선인교육개황-사립학교-소학, 중학, 군사교육」(한옹,『간도사신론』상권, 우리들의 편지사, 1993)
「내가 다닌 북일중학교」(강석훈,『간도사신론』상권, 우리들의 편지사, 1993)
국사편찬위원회(www.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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