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내의원 의관을 역임하였으며, 허준과 함께 선조를 치료한 의관·공신.
개설
생애
선조대 명의 허준(許浚), 『의림촬요(醫林撮要)』를 저술한 양예수(楊禮壽)와 함께 활동하며, 왕실 구성원들의 질병을 치료하였다. 이로 보아 이공기도 내의원 소속의 어의(御醫)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침을 잘 놓아 침폄술에 능했다는 당대의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때 선조와 세자를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당대 허준과 함께 명성이 높았던 의관이다.
활동사항
임진왜란이 발생하고 명나라 원군이 참전한 후 부상자가 발생하자, 이공기는 명나라 군사들을 치료하였다. 1593년(선조 26) 비변사에서는 다친 명나라 군사에게 내의원 의관을 보내 치료할 것을 건의하였다. 명군은 전쟁 중 주로 칼에 찔리거나 탄환을 맞고 화상을 입었는데, 이공기가 침폄술에 능했기 때문에 차출되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중에 이공기는 선조를 호종하였고, 특히 1597년(선조 30) 이명증(耳鳴症) 등으로 건강이 편하지 않았던 선조에게 양예수·허준과 함께 입시하여 침술을 행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허준과 함께 선조를 치료하며 침술을 시행하였다.
상훈과 추모
1604년(선조 37) 임진왜란 때에 한양에서 의주(義州)까지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봉되었으며, 한계군(韓溪君)에 봉해졌다.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영당(影堂)이 있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제천시지』(제천시지편찬위원회, 2004)
- 「제천의 한계영당 고문서의 검토」(구완회, 『지역문화연구』8, 세명대학교, 2009)
- 디지털제천문화대전(jecheon.grandcultur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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