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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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 / 격구보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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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개념
말을 타고 공채로 공을쳐 승부를 내는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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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말을 타고 공채로 공을쳐 승부를 내는 경기.
내용

옛날 무관들과 민간에서 하던 무예의 한 가지로 말을 탄 채 숟가락처럼 생긴 막대기로 공을 쳐서 상대방 문에 쳐넣는 놀이이다. 민간에서는 이를 ‘공치기’ 또는 ‘장치기’라고 하였으며, 중국에서는 ‘타구(打毬)’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는 북방민족인 요나라나 금나라 사람들이 이를 즐겼으며, 최치원(崔致遠)이 당나라에 머물러 있을 때에도 크게 유행하였다고 전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부터 격구를 하였는지 확실한 기록이 없다.

다만 ≪고려사≫에 의하면 918년(태조 1)에 상주적수(尙州賊帥)인 아자개(阿字蓋)가 투항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해왔을 때, 그를 맞이한 환영식 연습을 격구장에서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놀이를 삼국시대에 이미 받아들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 의종 이후에는 차차 국가적인 오락 행사가 되었으며, 특히 궁중에서는 단오절에 이를 성대하게 벌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세종이 격구의 의의를 강조하여 “격구를 잘 하는 사람이라야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 할 수 있으며, 창과 검술도 능란하게 된다.”고까지 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무예의 하나로 여겨서 정기적인 군대 열병식에서는 반드시 이를 실시하였고, 또한 무과시험 과목에까지 포함시켰다.

이 놀이는 경기장에 좌우편 선수들이 줄지어선 가운데 한 사람이 들어가 공을 공중으로 쳐올리는 것으로 시작되며, 선수들은 제각기 말을 타고 달려나와 공을 빼앗아 가지고 상대방 문전을 향해 공채로 몰고 간다. 격구는 구문(毬門)을 세우고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것이 없이도 즐길 수 있다.

구문을 세우고 하는 방법에는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문을 경기장 양쪽에 세우고 양편에서 서로 공을 마주 쳐 넘기는 방법이고, 둘째는 문을 하나만 세우는 방법인데, 두 개의 기둥 사이의 윗부분의 가운데에 구멍을 뚫은 널빤지를 건너대고 아래에는 그물을 쳐서 이 구멍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공은 그물에 걸려 되돌아 나온다. 공이 구멍을 빠져나갈 때마다 1점을 얻는다.

셋째는 경기장 한 끝에 문을 세우고 다른 한 끝에서 출발하여 일정한 순서에 따라 공을 치면서 돌아오는 방법이다. 공채의 길이는 1m쯤 되며 끝을 숟가락처럼 우묵하게 만들었다.

단청을 입히거나 끝에 상모를 달기도 한다. 공은 나무를 둥글게 깎은 것으로 표면에 옻칠만 하거나 수놓은 비단으로 싸기도 한다. 복장은 선수들의 눈에 쉽게 띄도록 하기 위하여 서로 다른 색깔의 것을 입는다.

참고문헌

『고려사』
『고려도경』
『세종실록』
『용비어천가』
『경국대전』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朝鮮風俗資料集說』(朝鮮總督府中樞院, 1937)
「한국의 격구」(최상수, 『자유공론』, 자유공론사, 19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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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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