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유연성이나 민첩성 등을 응용하여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동작을 취하거나, 도구나 동물 등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능을 총칭한다.
전통적인 것으로 줄타기·장대타기·죽방울받기·공놀리기·접시돌리기·마상재(馬上才)·불토하기·굴레엮기·굴레빼내기·무동(舞童) 등이 있고, 현대의 공중그네와 동물곡예 등이 있다.
우리 나라는 일찍이 백제·신라 시대부터 곡예가 있었다. 중국 당나라 때의 학자 이연수(李延壽)의 ≪북사 北史≫ 백제전(百濟傳)에 농구(弄球) 등 잡희(雜戱)가 있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 헌강왕 때의 학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향악잡영 鄕樂雜詠> 다섯 시 중 공놀리기를 보고 지은 <금환 金丸>이라는 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 및 신라 백희(百戱)에도 곡예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 말기의 학자 이색(李穡)의 ≪목은집 牧隱集≫ 권20에 수록된 <구나행 驅儺行>이라는 시 중 곡예를 보고 읊은 시구가 있다. 즉, “불을 토해내고 칼을 삼킨다(吐出一回祿呑靑萍).”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은 불토하기와 칼삼키기의 곡예종목인 것이다.
또 같은 책 권33에 “긴 장대로 공중에 오르기를 평지같이 하며(長竿倚漢如平地)”는 장대타기이며, “폭죽불이 하늘을 치솟으니 빠른 우뢰와 같도다(爆竹衝天似疾雷).”는 폭죽터뜨리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곡예는 조선 초기 <산대잡희 山臺雜戱>에 포함되어 연희되었다.
성종 때의 학자 성현(成俔)이 잡희를 보고 지은 시 <관괴뢰잡희 觀傀儡雜戱> 중 “땅재주로 몸을 던지는 것을 갖가지로 나는 듯이 하며(踉絓投身條似飛)”는 재주넘기[翻身]이고, “줄타고 공놀림에 공교한 술법이 많고(走索弄丸多巧術)”는 줄타기와 공놀리기인 것이다.
곡예는 조선시대 나례도감(儺禮都監)에 예속되어 있었고, 곡예인은 재인(才人)이라 하였는데, 기록을 살펴볼 때, 옛날부터 전승되어오는 종목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요즈음까지 마상재·줄타기·죽방울받기·대타기·재주넘기·사발돌리기·시돌리기·무동놀이·상모돌리기 등이 잔존, 전승되고 있으나, 현재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