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강녕군(江寧君) 홍선(洪詵)의 아들이며, 한희유(韓希愈)의 사위이다.
충선왕이 세자로서 연저(燕邸: 연경의 사저)에 있을 때 시종하였으며, 1310년(충선왕 2) 우부대언(右副代言)에 등용되었다.
1328년(충숙왕 15) 만호(萬戶)로서 낙안군(樂安君) 김지겸(金之謙), 판사(判事) 김천일(金千鎰)과 함께 심양왕 왕고(瀋陽王 王暠)의 심복이 되어 고려가 원나라에 배반한다고 무고하였으며, 또 왕이 눈 멀고, 귀머거리이며, 벙어리라고 원나라에 참소하였다.
1332년(충숙왕 복위 1) 원나라에서 객성태사(客省太史) 도치(都赤)를 보내어 뇌물을 받아 위세와 권력이 상당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큰 섭행정동성사(攝行征東省事) 장백상(蔣伯祥)을 가두고, 전 정승(政丞) 김심(金深)과 홍수를 임시로 정동성사(權行征東省事)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