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이 1352년(공민왕 1) 연저수종공신(燕邸隨從功臣)을 정하여 토지와 백성을 내릴 때 상호군으로서 이등공신에 책록되었다. 다음 해 상호군 김성보(金成寶)와 함께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곰 가죽과 새끼양의 가죽을 바쳤다.
1354년 밀직부사를 거쳐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었으며, 1356년 반역을 꾀한 기철(奇轍) 일파를 숙청할 때 공을 세웠다.
같은 해 평리(評理) 인당(印璫)과 함께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압록강 서쪽의 8참(八站)을 공격할 때, 인당보다 뒤에 도착하여 술주정을 부리다 인당의 부사(副使)인 사윤(司尹) 신순(辛珣)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1359년 기철일당을 제거한 공을 정할 때 녹권(錄券)을 받고 그 부모도 작위를 받았으며 자손에게는 음직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