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0년(원종 11) 삼별초의 난 때 장군으로 출전하였으나, 7일간이나 공격을 당한 금성(錦城 :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을 구하지 않았다 하여 김방경(金方慶)의 탄핵으로 1271년 안세정(安世貞)과 함께 관직에서 삭탈되었다.
이듬해 환관을 통하여 다시 기용되어 안남도호부사(安南都護府使)가 되었으나, 처와 함께 삼별초에게 붙잡혔다가 1273년에 빠져나와 왕을 인견(引見)하고 위로를 받았다. 충렬왕 때 대장군이 되고, 1278년(충렬왕 4)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왕을 제안공(齊安公) 왕숙(王淑) 등 왕족과 함께 압록강에까지 가서 만났다.
1283년 염승익(廉承益)과 함께 현화사(玄化寺)를 수리하고, 남계원(南溪院)과 왕륜사(王輪寺)의 석탑을 수리하였다. 1284년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로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다. 1287년 2월 동판밀직사(同判密直事)가 되고, 6월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