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 표제어를 한글 자모순서(가~하)에 따라 배열한 후, 이에 대응하는 영어를 간단한 주석의 형식으로 배열한 사전으로 전체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사전은 한국인이 편찬한 최초의 한영이중어사전이라는 점과 한국어를 영어와 등가성을 이루는 어휘들로 구성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당시 미군정기(美軍政期) 시기 동안 이중언어사전으로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군정기 시기 동안 사용되던 영어를 조선인 입장에서 이해하기 위해 편찬되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최신선영사전』(한성, 대한출판사, 단기 4278, 총 672면)으로 재발간되었고, 1946년에 재판이 나왔다.
전체 구성을 보면 1쪽당 40행 내외이고, 총 654쪽으로 되어 있어, 표제어 수는 약 26,000 항목 이하로 추정된다.일부 항목(예:가ᄭᅡ운 a (親近) Intimate;familiar.)에는 예문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는 실질적인 번역을 의도해서 편찬된 것임을 보여준다.
서두 부분(pp. 12)에는 ‘Foreword’(머리말), ‘引用略字’(인용약자), ‘The Korean Alphabets with the English Equivalents’(한글발음법)이 수록되어 있고, 이어서 ‘〔가〕’부터 ‘〔하〕’에 이르는 어휘(pp. 1653)가 항목마다 국어, 품사, (한자), 영어 순으로 기재되어 있다.(예:가 n. (可) Good;right;well.)
그리고 부록에 해당하는 끝부분에는 수학∙화학∙천문학∙의학∙상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부호를 정리한 ‘Signs and Symbols used in Writing and Priting, 筆記及印刷用符號’(필기급인쇄용부호)(pp. 655659)와 1907년(광무 11) 7월 법률 제1호부터 개정된 1908년(융희 2) 4월 제8호까지 조선신문을 발행하는 법률의 원문과 그에 대한 영역문을 ‘朝鮮新聞紙法’(조선신문지법)·‘Korean Press Law’(pp. 660671)으로 병기한 후, 경성(京城)의 시각(정오 12시)을 기준으로 파리(巴里), 로마(羅馬), 리스본, 호놀루루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의 시간표를 ‘The World's Time’(세계시간, p.672)로 시각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내용상 특이한 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전 작업에서 앞선 사전을 참고하는 한편, 어느 정도는 독자적인 형태로 진행하였는데, 조선인 스스로가 최초로 집필한 사전이라는 점이다. 이는 앞선 사전과는 달리 식민지 관련 어휘나 당대 상황을 반영한 예문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둘째, 한국어를 영어와 등가성을 이루는 어휘들로 재편한 것이다. 이를 통해 서구어-한국어 간의 등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집안식구, 값, 사이, 바로 가지 않고, 올곧다, 억지로’와 같은 일상어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과 대부분의 한국어 어휘가 한자 해제어와 함께 등장한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이런 현상은 그 이전의 어떤 영한사전, 한영사전보다도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한편, 조선어 표제어-영문 해제어를 통해 표기법과 한-영 대응쌍을 보면 제임스 게일의 『한영ᄌᆞ뎐』을 비롯해 이전의 영한사전과 한영사전을 참고한 흔적을 볼 수 있다. 한글 표제어의 경우는 게일의 『한영ᄌᆞ뎐』(1911년)이, 영문 해제어의 경우는 이전 외국인 편찬의 이중언어사전과 일치하는 부분이 발견된다. 또한 몇몇 어휘들을 통해 게일의 『한영ᄌᆞ뎐』 최종본(1931)을 비롯한 후속 사전들에도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음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당시 통일된 한글맞춤법이 없었던 사정을 고려한 결과로 짐작된다.
한국인이 편찬한 최초의 한영사전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의의를 지닌다. 1911년에 나온 게일의 『한영ᄌᆞ뎐』을 기준으로 한다면 거의 17년 간의 공백을 뚫고 나온 한영사전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이중어사전의 작업을 조선인 스스로가 필요에 의해서 했다는 점과, 또 이를 통해 서구어-한국어 간의 등가관계를 확보할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과 지식의 성숙이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선어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긴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1882~1944)는 김동성의 한영사전을 조선총독부의 『조선어사전』(1920), 조선어연구회의 『선화신사전』(1930)과 함께 근대에 조선인이 편찬한 중요한 사전으로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