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제 이화문 탕기 ( )

공예
작품
국가유산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의 은제(銀製) 탕기(湯器).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은제이화문탕기(銀製李花文湯器)
분류
등록문화유산/기타/동산(미술품)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가등록문화유산(2009년 10월 12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2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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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대한제국기(大韓帝國期)의 은제(銀製) 탕기(湯器).
구성 및 형식

2009년 등록문화재(현, 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높이 11㎝, 뚜껑 지름 18.3㎝. 은을 재료로 사용해 표면을 망치로 두드린 단조(鍛造)기법으로 제작하였다. 뚜껑과 몸체로 구성되었으며 국이나 찌개 등을 담는 탕기로 사용되었다.

내용

뚜껑은 가운데 부분이 원형으로 평평하고 가장자리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경사를 이루다 꺾인 형태이며, 몸체는 낮은 원통형으로 만들어졌다. 뚜껑 가운데 부분에 연꽃 봉오리 모양의 손잡이를 달았다. 뚜껑과 몸체 중앙에 대한제국(大韓帝國)의 국장(國章)인 이화문(李花文)을 음각하였고, 뚜껑의 경사면에는 인장체(印章體)로 ‘만수무강(萬壽無疆)’ 넉 자를 금감입(金嵌入)하였다.

이화문은 조선왕조 왕실(王室)인 전주 이씨를 상징하는 꽃, 이화(오얏꽃)를 도안화한 것으로, 이왕직미술품제작소(李王職美術品製作所)에서 만든 모든 공예품에 장식되어 있다. 이왕직미술품제작소는 1908년 서울 광화문 근처에 설립되었던 왕실기물 제작소로 ‘조선의 전통적 공예미술의 진작’을 취지로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에는 명칭이 ‘한성미술품제작소(漢城美術品製作所)’였으나 1910년 12월 ‘이왕직미술품제작소’로 변경되었고, 1922년 일본인이 운영하는 주식회사로 전환되면서 ‘조선미술품제작소(朝鮮美術品製作所)’로 바뀌었다. 한성미술품제작소 시기에는 어느 정도 운영상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왕실공예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했지만, 일본인이 운영에 개입하게 되는 이왕직미술품제작소 시절부터는 그 성격이 달라졌다.

이런 운영상의 변화를 고려할 때, 이 은제탕기는 이왕직미술품제작소의 설립취지가 유지된 ‘한성미술품제작소’ 시기(1908~1910)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창덕궁 유물이였음을 고려할 때, 황실 연회에서 사용된 것으로 생각되며 사용한 흔적이 잘 남아 있어 공예사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이다.

참고문헌

『한국 근대공예사론』-산업과 예술의 기로에서(최공호, 미술문화, 2008)
『근대를 보는 눈』-한국근대미술 : 공예(국립현대미술관, 얼과알, 1999)
「대한제국기 국가 시각 상징의 연원과 변천」(목수현, 『미술사논단』27, 한국미술연구소, 2008)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연구」(최공호, 『고문화』35,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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