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환

  • 정치·법제
  • 인물
  • 현대
해방 이후 보건부차관, 농림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경제인.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93년 6월 19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7년 6월 11일
  • 출생지전라북도 금산(지금의 충청남도 금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희만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4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해방 이후 보건부차관, 농림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경제인.

내용

1907년 전라북도 금산(현, 충청남도 금산)에서 출생했다. 1932년 오카야마현 제6고등학교 졸업, 1935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을 졸업했다. 재학 중인 1934년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했다. 1935년 경기도 내무부 학무과 속, 1937년 경기도 용인군수로 부임했으며, 재직시 중일전쟁과 관련한 군용물자의 조달, 군수품 제조 공출, 국방헌금과 애국기 헌납자금 모금 등의 전시업무를 수행했다. 1938년 5월 조선인의 자발적인 전쟁동원과 황민화를 목표로 조직된 녹기연맹에 연맹원으로 가입했다.

1940년 조선총독부 식산국 사무관에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전시 최대의 관변단체인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사무국 식산부 주사에 선임되었다. 1944년 조선총독부 교통국 서기관 겸 광공국 서기관, 1945년 강원도 광공부 광공부장 겸 민정관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제헌국회 헌법기초전문위원, 상공부 차관에 임명되었다가 친일경력이 문제가 되자 사임했다. 1950년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 보건부 차관 등을 거쳐 1951년 농림부 장관을 역임했다.

장관직을 물러난 뒤 1953년 5월 무역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어 약 1년 간 재직했으며, 1954년 해운조합연합회장, 1955년 도쿄에서 개최된 국제상공회의소 한국대표, 1965년 전경련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1967년 10월 아시아 태평양지역 경제사절단 부단장으로 동남아시아를 순방하기도 했으며, 부산프라자호텔 회장으로 재직하며 해운대에서 정원수 농장을 경영했다. 1993년 6월 19일 사망했다.

참고문헌

  • - 『친일인명사전』 3 (민족문제연구소, 2009)

  • - 『재계회고』7 (한국일보사, 1981)

  • - 「전 농림부 장관 임문환 씨」(『동아일보』, 1993.6.20)

  • - 「임시 등을 추천 농은 민간위원에」(『동아일보』, 1957.5.5)

  • - 「양 분과위원장 결정 헌법기초업무 진행」(『동아일보』, 1948.6.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