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해방 후 월남했다. 고려대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지원해 육군 대위로 제대했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1956년 한국일보에 입사, 1957년부터 동양통신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1964년 동양통신 워싱턴 특파원이 되었고, 1965년 박정희 대통령 방미를 현지 취재했다.
1968년 동양통신 정치부장 겸 편집부국장을 거쳐 1970년 12월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되었다. 1971년 4월부터 청와대 부대변인을 하다가 1971년 7월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이 되었다.
1975년 문화공보부 장관이 되었다.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은 정부 대변인이기도 하였으므로 정부 대변인 역할을 했다. 10년 가까이 박정희 대통령의 생각을 국민에게 대변하며, ‘박정희의 입’으로 불릴 정도로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한 인물이기도 하다. 문화공보부 장관 시절 「문예중흥 5개년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
1980년 동양통신 사장으로 언론계에 복귀했으며, 언론 통폐합 당시 탄생한 단일 통신사인 연합통신(현 연합뉴스)의 초대 사장을 지냈다.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장,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 서울언론재단 이사장, 한국국제문화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1년 주싱가포르 대사에 기용되어 외교관 생활을 했고, 1992년 대우 부회장에 영입되어 1995년부터 대우경제연구소 회장을 지냈다. 2009년 사망했으며, 『한국정치 100년을 말한다』(1999), 『박정희를 말하다: 그의 개혁정치 그리고 과잉충성』(2006) 등의 저서를 남겼고,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