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능선 동쪽 끝자락의 해발 960m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다. 길이 120m, 폭 50m 정도의 장타원형 고산습지이다. 1996년 여름에 처음으로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내륙에서 발견된 산지습지 중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습지가 위치한 왕등재는 진틀재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에게 불리고 있다. 진틀이라는 말은 습지를 뜻하는 지방사투리이다.
왕등재습지는 백두대간의 말단부인 지리산 동남단에 위치한 곳으로 900m 이상의 고봉이 능선을 이루고 있어 지형이 비교적 험준하다. 주변지역은 주로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류가 분포하고 이를 관입한 화강섬록암과 화강암이 혼재되어 있어 풍화층이 잘 발달해 있다.
주변 산지의 물은 이 습지로 모였다가 다시 남쪽 계곡으로 작은 물줄기를 형성하여 내려가고 있다. 이 물줄기를 따라서 또다시 소규모의 습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습지의 이탄층이 씻겨 내려와 퇴적되어 있다.
왕등재습지의 인근 토양은 발달 심도가 매우 깊다. 유기물층인 O층이 두꺼울 뿐만 아니라 그 하위의 A층도 매우 두꺼운 특징이 있다. 또 습지의 기반암인 화강편마암은 거정의 반상변정을 다량 함유하고 있으며, 장석의 함량이 매우 높다. 이들이 풍화되면 고령석 등 다양한 점토광물이 생성되는데, 이들은 유기물과 더불어 보수성이 매우 뛰어나고 투수성이 불량한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은 토양의 특징 때문에 하절기 우기 동안에 장기간에 걸쳐 많은 양의 물을 보수하게 된다. 투수성이 불량하기 때문에 함양된 물은 단기간에 배출되지 못하고 아주 서서히 침출된다. 습지의 주변 사면에서 이와 같은 형태로 배출되는 지하수는 습지의 유지수 역할을 한다.
2007년에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습지 내에 뻐꾹나리·창포 등 58종의 습지식물과 13종의 포유류, 72종의 조류, 8종의 양서·파충류, 큰 땅콩물방개 등 39종의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 물먼지말류 등을 비롯한 158종의 담수조류, 그리고 붉은배새매·까막딱따구리 등 천연기념물과 새홀리개·삵·담비 등의 멸종위기야생동물도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했다.
습지 내에는 장경 1∼1.5m, 수심 0.2m 이내의 웅덩이군이 4개가 있으며 최상부에는 비교적 큰 5m 이상의 못이 형성되어 있으나 갈수기에는 고갈되기도 한다. 습지내 유로는 이들 웅덩이를 따라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