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1일에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세계자연유산 잠정 목록으로 등재된 설악산천연보호구역 내에 있는 명승이다. 천불동계곡은 지리산의 칠선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대한민국의 3대 계곡으로 꼽히는 곳이다. 내설악의 수렴동과 함께 설악의 2대 계곡으로도 꼽힌다.
신흥사 일주문을 지나면 천불동계곡이 시작되며, 비선대는 계곡의 입구에 있는 커다란 바위이다. 비선대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약 7㎞ 구간의 계곡을 천불동계곡이라 부른다. 천불동계곡은 외설악을 대표하는 절승의 계곡으로, 대청봉의 공룡능선과 화채능선 사이에 있다. 쌍천은 죽음의 계곡과 염주골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비선대 근처에서 동북쪽으로 방향으로 틀어 설악동으로 빠져 나간다.
비선대는 그 아래 부분에 있는 와선대(臥仙臺)에서 노닐던 마고선(麻姑仙)이라는 신선이 와선대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누워서 감상한 후 하늘로 올라갔다는 데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천불동은 계곡 양쪽의 기암절벽이 천 개의 불상이 늘어서 있는 모습과 유사하여 생긴 이름이다. 또는 계곡 일대에 펼쳐진 천봉만암(千峰萬岩)과 청수옥담(淸水玉潭)의 세계가 마치 천불의 기이한 경관을 구현한 것 같다는 데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천불동은 문닫이골로도 불렸다.
천불동계곡에는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인해 형성된 크고 작은 폭포와 소가 발달해 있다. 깎아지른 절벽과 폭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뾰족한 봉우리 사이로 깊게 패인 협곡이 형성되어 있다. 계곡을 따라서는 급경사의 단애면이 발달되어 있다.
수직 절벽으로 이루어진 지점에서는 암반 붕괴에 따른 낙석이 발생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2007년 2월의 해빙기에는 천불동계곡의 병풍교에서 대규모 낙석이 발생하였다. 기반암은 흑운모화강암이며, 관입 화강암의 특성상 다수의 절리가 발달해 있다. 이러한 지질구조는 풍화의 진행 및 다양한 자연 변화에 따라 낙석 위험을 더욱 커지게 한다.
비선대에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이 찾아와 자연의 이치를 감상하면서 바위 표면을 파고 글자를 새겨넣은 각자(刻字)가 여럿 있다. 특히 윤순(尹淳)이 쓴 것으로 알려진 ‘비선대(飛仙臺)’라는 글자가 대표적이다. 고종 대에 갑신정변의 3일 천하로 유명한 김옥균(金玉均)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설악에서 많은 시를 남긴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은 『설악일기(雪岳日記)』에 “瓊臺俯金潭 右扇排靑峰 融時備衆妙 豈惟勢奇壯(경대 같은 맑은 물 굽어보니/ 부채 같은 청봉이 그 곳에 펼쳐졌네/ 이곳이 생길 때에 묘리를 갖추었던가/ 그 세가 어찌하여 이리도 기장한가)”라고 하여 비선대 주변의 경관을 묘사하였다. 김몽화(金夢華)도 『유설악록(遊雪嶽錄)』에서 설악산 비선대 주변의 경관을 극찬하였다.
천불동계곡에는 와선대를 비롯하여 비선대, 문수보살이 목욕했다는 문주담(文珠潭), 귀신 모양의 귀면암(鬼面岩), 이호담(二湖潭), 오련폭포(五連瀑布), 양폭(陽瀑), 천당폭포(天堂瀑布) 등이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천불동계곡은 매우 험한 곳이었지만 1969년에 안전시설물을 설치한 후 일반인들의 출입이 허용되었다.
계곡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금강굴은 신라 때의 고승 원효가 불도를 닦은 곳으로도 유명하다.계곡의 입구를 지키며 수문장 역할을 하는 귀면암은 바위의 형상이 귀신을 닮았으며, 겉문다지 또는 겉문당으로도 불렸다. 오련폭포는 5개의 소규모 폭포가 연이어 나타나는 아름다운 폭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