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은사 비로자나불도 (서울 )

서울 봉은사 비로자나불도
서울 봉은사 비로자나불도
회화
유물
문화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 판전에 봉안되어 있는 19세기 비로자나불도.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 판전에 봉안되어 있는 19세기 비로자나불도.
개설

200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면 바탕에 채색. 세로 302.3㎝, 가로 236㎝. 1886년 판전 상단(上壇)의 후불도로 제작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같은 시기에 칠성도와 산신도가 함께 조성되었으나 칠성도는 1942년에 북극보전을 건립하면서 이안되었고 산신도는 남아 있지 않다. 이 불화는 비로자나삼존과 가섭존자, 아난존자, 사천왕만을 그린 간략한 구성의 불화이다.

증명으로는 호봉 응규(虎峯 應奎), 한은 정준(漢隱 正俊), 환은 윤정(幻隱 允定)이 참여하였으며, 등운 수은(騰雲 修隱)이 화주가 되었고 23명의 상궁들이 시주하였다. 시주자들은 고종과 고종의 비인 민씨와 세자(후에 순종)의 수명장수를 기원하고 있어 조선시대 서울의 우두머리 사찰이자 능침원찰인 봉은사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불화 조성은 영명 천기(影明 天機)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으며 경선 응석(慶船 應釋)이 출초를 하고 동호 민철(東昊 震徹), 연하 계창(蓮荷 啓昌), 종현 현조(宗現 賢調), 혜능 창인(惠能 彰仁) 등이 함께 참여하였다.

내용

봉은사 판전은 불교 경판을 보관하기 위해 1886년에 건립된 전각이다. 봉은사에서는 30년 전인 1856년에 『화엄경소초(華嚴經疏秒)』를 비롯한 『금강경(金剛經)』,『유마경(維摩經)』 등을 개판하였고 이들 경판을 보관하기 위해 30년 후에 판전을 건립하였다. 판전의 후불도로 비로자나불도를 봉안한 것은 법보인 경판과 화엄사상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1770년에 조성된 송광사 경판 보관처인 화엄전에 화엄불도를 봉안하였던 사례가 있다. 이는 조선 후기『화엄경』이 강원의 최고 교재이자 교학의 꽃으로 자리 잡았던 불교계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화면 중앙에는 본존인 비로자나불이 수미단 위의 연화대좌에 지권인을 결하고 안정감있는 자세로 결가부좌하고 있다. 본존의 아래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연꽃 위에 반가좌한 자세로 앉아있다. 문수보살은 여의(如意), 보현보살은 백련(白蓮)을 들고 본존을 향하고 있으며, 여래 좌우에는 합장을 한 가섭과 아난이 서 있다. 사방에는 이들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자리하고 있다.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는 두 손을 모으고 본존을 향해 서있는 형상으로 모두 녹색의 두광을 두르고 붉은 가사를 걸치고 있다. 주름이 깊고 백발이 성성한 가섭존자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 쥐고 있는 반면 젊은 사미승 같은 아난존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사천왕은 각각 비파를 연주하거나 칼을 들고 있는 모습, 혹은 용과 여의주를 든 형상, 7층탑을 받쳐 든 모습이며, 더부룩한 수염과 부릅뜬 두 눈은 신장으로서 용맹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놀란 듯한 동그란 두 눈은 19세기 후반 경기도 지역 불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해학적인 느낌을 준다.

특징

주색을 위주로 하여 녹색과 황색, 흰색 등을 사용하였으며, 특히 청련 대좌를 비롯하여 천공, 보살과 천왕의 옷에 부분적으로 청색을 가하여 마치 청색과 주색이 주조색인 것처럼 보인다. 청색은 19세기 후반 두드러지게 사용되는 안료로서 주조색인 주색과 대비와 조화를 이루며 색채의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비로자나의 신광 내부는 금색으로 칠하여 빛을 발하는 장광상(丈光相)의 형상을 보다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일반적인 후불도와 달리 비로자나 삼존과 가섭존자, 아난존자, 사천왕만을 그린 간단한 구도를 취하고 있지만 왕실 후원 불화의 품격이 느껴지는 조선 말기의 수작이다. 음영이 묘사된 권속들의 얼굴과 신광 내부를 금색으로 처리한 수법 등은 19세기 말 서울 · 경기 지역에서 특히 유행한 불화 양식을 잘 보여준다.

참고문헌

『한국의 불화』35 조계사 직할사암편(중)(성보문화재연구원, 2005)
문화재청(www.cha.go.kr)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이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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