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말기의 유학자 계재(溪齋) 정제용(鄭濟鎔)을 그린 초상화.
개설
내용
정제용 초상의 얼굴색은 가라앉은 황갈색의 색조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콧등과 이마에는 서양화법에서 응용한 광선 효과를 주어 정면상이면서도 입체감을 강조하였다. 얼굴 묘사에는 미세한 붓질을 무수히 반복하여 밀도 높은 질감을 살림으로써 이전 시기의 초상화와 다른 극사실의 세계를 보여준다. 옷 주름을 선으로 묘사하던 이전 방식과 달리 옷의 주름과 굴곡진 부분에 음영법(陰影法)을 적용하여 깊은 입체감을 주었다. 바닥에 깔린 돗자리는 채용신의 다른 초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돗자리의 결이 사선방향이 아닌 수직방향으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채용신은 57세인 1906년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아들, 손자와 함께 ‘채석강도화소(蔡石江圖畵所)’라는 공방(工房)을 차린 뒤 주문을 받아 초상화를 제작하는 전문화가로 활동하였다. 이후 채용신의 초상화는 대상 인물의 실상에 대한 탐색보다 외면적 형태에 치우치게 되는데, 정제용 초상은 그 이전에 그린 것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의 초상화, 형과 영의 예술』(조선미, 돌베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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