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朴殷植, 1859∼1925)이 만주와 대한(大韓)의 고대사를 사료로써 규명한 논문으로, 장절이 나뉘어 있지 않지만 서론·본론·결론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고대 강역과 혈통 및 국교(國敎)를 확인하여 민족정체성을 찾고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데 목적을 두었다.
1911년 음력 5월 박은식은 서간도로 망명하여 환인현 동창학교에 머물면서 고대사 저서 편찬에 온 힘을 쏟아 단군과 기자를 다룬 『대동고대사론』, 고구려를 다룬 『동명성왕실기』·『명림답부전』·『천개소문전』, 발해를 다룬 『발해태조건국지』, 금나라를 다룬 『몽배금태조』를 차례로 저술하였다.
1책. 유인본.서론(4.5쪽)·본론(12.5쪽)·결론(1쪽)·논평(1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에서는 오늘날 중국의 한족(漢族)이 조상의 역사를 받들어 자강과 자주정신을 내세우는데, 우리 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찾지 않고 다른 민족에 동화될 위기에 처했다며 문제 제기를 하였다.
본론에서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장으로 나누어 서술하였는데, 전자는 황제와 단군, 단군의 후예, 단군의 교화, 단군조선의 강역을 서술하였고, 후자는 중국 문헌상 기자조선의 위치, 국내 기자조선 위치설 비판, 국내 기자 유적 비판으로 세분해 다루었다.
결론에서는 “첫째, 북쪽 경계로 북평군 및 유주가 있던 요서·요동 대륙까지, 동·서·남쪽으로 동해·서해·남해 연안까지 단군조선 강역이었다. 둘째,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혈통은 만주와 대한이 원래 한 나라였으니 그 백성도 원래 한 겨레였다. 셋째, 대동민족은 엄연히 시조가 있고, 신성한 민족은 신성한 정신 곧 역사가 있다.”고 하여, 시조에게 귀의하고 역사를 알아야 민족이 바로 선다고 주장하였다.
끝으로 논평은 교열자이자 동창학교 교주(敎主)인 윤세복(尹世復, 1881∼1960)이 그의 성과를 찬양한 글이다.
이종휘의 『수산집』, 이익의 『성호사설』, 안정복의 『동사강목』을 주요 사료로 참고한 것으로 보아 남인과 소론 계통 실학자들의 역사인식이 박은식의 민족사학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그의 대동(大東)사상은 『단군교 오대종지 포명서(檀君敎五大宗旨佈明書)』 등 대종교 문헌에서도 영향 받은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