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열전」 ‘명림답부(明臨答夫)’를 소재로 전통문학 양식인 전(傳)의 형식을 빌려 고구려의 장수이자 초대 국상인 명림답부에 관하여 서술한 일대기다.
1911년 박은식이 서간도 윤세복의 동창학교에 머물면서 한인 자제들의 역사교육을 목적으로 저술하였다. 『동명성왕실기』를 완성한 뒤 이어서 음력 9월에 『명림답부전』을 지었다.
서론 6쪽과 본문 12장 38쪽으로 구성되었다. 부록으로 「역사가」 2쪽이 별첨되어 있다.
서론에서 고구려 역사의 숭배와 기념의 당위성을 논한 뒤, 본문에서 명림답부를 단군 신교(神敎)의 명맥을 이은 인물이자 고구려 선교(仙敎)를 이끈 종교지도자로서 각인시켰다. 또한 수성왕(遂成王, 71∼165: 제7대 차대왕)이 조의대선(皁衣大仙) 사무(師巫: 왕을 보좌하면서 국가의 길흉을 점치는 우두머리 무당)를 참형시킨 사건을 선교에 대한 박해라고 강변했다. 수성왕이 태조대왕의 왕세자를 시해하고 대신을 주살하는 등 폭정을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태조대왕이 별궁에 감금됐다가 승하하자, 명림답부는 선교 사수를 명분으로 수성왕을 단죄함으로써 국가를 바로 세우고 국상(國相)으로서 여생을 마감하였다.
한국역사를 만주중심으로 이해하면서 고구려 옛 터전인 환인현에 거주하는 동포와 자제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명장 명립답부를 명장을 본보기로 제시하였다. 한국근대사학사와 한국독립운동사에 중요한 문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