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봉명동유적은 무덤군과 취락이 복합되어 있는 대규모 유적이다. 발굴조사는 5개지구로 나누어 실시하였으며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기에 걸쳐 조성된 집자리와 분묘 등이 확인되었다.
청주봉명동유적은 충북대학교박물관이 1998∼1999년에 걸쳐 청주 준공업단지 개발예정지역을 발굴조사 한 결과 확인되었다. 유적은 총 5개 지구로 나누어 조사되었으며 확인된 유구는 다음과 같다.
Ⅰ지구는 원삼국~백제시대의 집터, 신라 석곽묘, 고려시대 토광묘와 석곽묘가 조사되었으며 그 아래에서 구석기시대의 문화층이 발견되었다. Ⅰ지구는 A와 B지역으로 나뉘어 조사되었으며, 토양쐐기가 발달한 황갈색찰흙층(A지역)과 토양쐐기 아래 기반암의 갈색 모래질 찰흙층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A지역에서는 몸돌·격지·잔손질된 석기·찍개 등이, B지역에서는 주먹찌르개·몸돌·여러 면석기 등이다.
Ⅱ지구에서는 청동기시대에 조성된 분묘·집터와 함께 삼국시대의 수혈 유구, 고려~조선시대 집터 등 총 28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출토유물로는 돌창·돌끌·붉은간토기·갈판·기와·자기 등이 있다.
Ⅲ지구에서는 고려~조선시대의 석곽묘 1기와 토광묘 49기, 회곽묘 1기, 옹관묘 1기 등의 무덤과 조선시대 집자리 , 요지, 노지 등이 확인되었다. 그 중 분묘유구에서 청자·분청사기·토기·동전 등이 출토되었다.
Ⅳ지구는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총 400여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A∼C의 3구역으로 나누어 조사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집자리 3기, 청동기시대 집자리 24기, 철기시대 말기∼백제 한성기의 토광묘 218기와 집자리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이 중 신석기시대의 주거지는 쌍청리 주거지와 성격이 유사한 동일문화 양상을 띄는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의 주거지는 A지역에서 시작된 방형의 주거지가 B구역으로 확산 이동되고 B구역에서 이르러서는 확연히 원형을 띄는 송국리형 주거지로 변모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물로는 무문토기와 붉은간토기·마제석검·석도·석촉 등이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부터 백제 한성기의 토광묘의 경우, 주로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까지의 시기로 편년되며 파배의 형태가 원초적인 것으로 볼 때 송절동기에서 신봉동기로 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된다. 특히 이곳에서 출토된 마형대구 21점은 원삼국시대에서 삼국시대 백제로 이어지는 시기의 변화양상과 마구의 성격에 대한 연구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Ⅴ지구에서는 생활유적과 분묘가 모두 확인되었으며 백제시대 집터, 고려시대 석곽묘 및 토광묘, 조선시대 집터 등 69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출토유물로는 가락바퀴·토기·청동합·동곳·청자·동전 등이 있다.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생활·매장유구가 확인되었고, 당시의 생활문화상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근처에 위치한 송절동고분군과 신봉동고분군을 시기적으로 연결시켜줄 수 있으며, 청주 북쪽 지역의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에 걸친 고분군 조영집단의 변천 양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즉 봉명동유적은 청주지역의 전시대에 걸친 역사문화의 변화·발달과정을 시대별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