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항사 석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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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항사 동탑 기단부에 새겨져 있는 남북국시대의 명문.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6년
  • 남무희
  • 최종수정 2025년 12월 18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갈항사 석탑기는 갈항사 동탑 기단부에 새겨져 있는 남북국시대의 명문이다. 갈항사지 동, 서 삼층석탑은 원래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 금오산 서쪽 기슭의 갈항사지에 동, 서로 배치되어 있었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시설에 전시되어 있다. 명문에 의하면, 758년에 갈항사를 중창하며 언적법사와 원성왕의 어머니인 계오부인 박씨 및 원성왕의 이모 등이 발원하여 동, 서탑 삼층석탑이 건립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일반형 석탑이 경주를 벗어난 지방에서 어떤 방식으로 조성되는지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명문에 이두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어문학분야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의

갈항사 동탑 기단부에 새겨져 있는 남북국시대의 명문.

개설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원래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 금오산 서쪽 기슭의 갈항사지에 동, 서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1916년 2월 도굴범들에 의해 파손된 이후 6월에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이후 경복궁 내 야외 정원에 전시되다가 2005년 다시 해체 복원되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석조물 정원의 야외전시실에 있다. 동, 서탑 가운데 동탑 기단부에 석탑기가 새겨져 있다.

내용

갈항사는 8세기초에 창건되어 조선전기까지 유지되다가 1799년 범우고(梵宇攷: 절의 존폐 · 소재 · 연혁 등을 기록한 책)가 편찬될 무렵에는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권4 의해5 승전촉루조에 의하면, 승전법사가 당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 의상법사에게 법장의 편지와 함께 법장의 저술을 전달했다는 내용과 함께 승전이 상주 개령군에 절을 짓고 돌해골들을 권속으로 삼아 화엄경을 강의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볼 때, 승전은 695년 무렵에 신라로 귀국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갈항사는 의상이 입적한 뒤에 승전이 부석사를 떠나 갈항사를 창건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갈항사가 제대로 사격을 갖춘 사찰로 변모한 시점은 갈항사지 동, 서 삼층석탑이 세워진 경덕왕대로 보이며, 절의 위세가 더욱 커진 시기는 동탑 기단부에 명문을 새긴 원성왕대로 볼 수 있다.

명문내용에 의하면, 천보 17년(758)에 남자 형제와 여자 형제 3명이 이 탑을 세웠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이 탑의 건립에 관여한 세 명은 영묘사의 언적법사와 원성왕의 어머니인 계오부인 박씨 및 원성왕의 이모였다. 그런데 이들이 탑에 석탑기를 새긴 것은 3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뒤인 원성왕 시절이다. 즉, 경덕왕대에 동, 서 삼층석탑을 세우고 원성왕대에 석탑기를 새겼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갈항사는 승전이 창건한 이후 2차례 정도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번째 중창은 탑을 건립한 758년이며, 두번째 중창은 명문을 새긴 원성왕대로 볼 수 있다. 첫번째 중창은 승전이 창건한 이후 그대로 유지되던 갈항사에 큰 탑을 건립하고 불상을 조성하였는데 불상이 안치될 정도의 불사가 행해졌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에 세력이 크지 않았던 원성왕의 외삼촌과 어머니 및 이모는 갈항사를 중창하였다는 사실을 적지 않았지만 원성왕이 즉위한 이후의 중창에서는 자신들의 위상이 예전보다 좋아졌기 때문에 석탑기를 새겨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 결과 석탑기에는 갈항사 동, 서 삼층석탑이 758년에 세워졌다는 사실과 함께, 이 탑의 발원자가 원성왕의 외삼촌인 영묘사의 언적법사 및 원성왕의 생모와 이모가 관여하였음을 당당하게 밝혔다고 생각된다.

특징

갈항사 동, 서 삼층석탑은 758년이라는 건립연대와 건립주체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석탑이다. 또한 동탑 기단부에 새겨진 석탑기를 통해 언제 누구의 발원으로 이 탑이 세워진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역사학과 금석학에서 주목을 받았다. 또한 명문 내용에 이두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어문학분야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황

현재 갈항사지에는 금당지로 추정되는 곳에 8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 보물명 김천 갈항사지 석조 여래 좌상)이 보호각 내에 보존되어 있다. 동탑지의 동편에는 머리부분이 복원된 석조불좌상이 야외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동, 서 석탑이 원래 있었던 곳에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갈항사 석탑기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일반형 석탑이 경주를 벗어난 지방에서 어떤 방식으로 조성되었는지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 『통일신라시대의 정치변동과 불교』(국학자료원, 2002)

  • - 「갈항사지 동, 서 삼층석탑에 대한 고찰」(임재완, 『동악미술사학』17, 2015)

  • - 「삼국유사 승전촉루조의 음미」(주보돈, 『신라문화제학술논문집』34, 2013)

  • - 「신라 중대 말기 중앙귀족들의 불사활동」(『이기백선생고희기념 한국사학논총』, 일조각, 1994)

  • - 「갈항사 석탑기」(정병삼,『역주 한국고대금석문』3,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 「김천 갈항사 석불좌상의 고찰」(문명대, 『동국사학』16,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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