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갈항사 석탑기는 갈항사 동탑 기단부에 새겨져 있는 남북국시대의 명문이다. 갈항사지 동, 서 삼층석탑은 원래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 금오산 서쪽 기슭의 갈항사지에 동, 서로 배치되어 있었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시설에 전시되어 있다. 명문에 의하면, 758년에 갈항사를 중창하며 언적법사와 원성왕의 어머니인 계오부인 박씨 및 원성왕의 이모 등이 발원하여 동, 서탑 삼층석탑이 건립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일반형 석탑이 경주를 벗어난 지방에서 어떤 방식으로 조성되는지를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명문에 이두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어문학분야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의
갈항사 동탑 기단부에 새겨져 있는 남북국시대의 명문.
개설
내용
명문내용에 의하면, 천보 17년(758)에 남자 형제와 여자 형제 3명이 이 탑을 세웠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이 탑의 건립에 관여한 세 명은 영묘사의 언적법사와 원성왕의 어머니인 계오부인 박씨 및 원성왕의 이모였다. 그런데 이들이 탑에 석탑기를 새긴 것은 30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뒤인 원성왕 시절이다. 즉, 경덕왕대에 동, 서 삼층석탑을 세우고 원성왕대에 석탑기를 새겼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갈항사는 승전이 창건한 이후 2차례 정도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번째 중창은 탑을 건립한 758년이며, 두번째 중창은 명문을 새긴 원성왕대로 볼 수 있다. 첫번째 중창은 승전이 창건한 이후 그대로 유지되던 갈항사에 큰 탑을 건립하고 불상을 조성하였는데 불상이 안치될 정도의 불사가 행해졌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에 세력이 크지 않았던 원성왕의 외삼촌과 어머니 및 이모는 갈항사를 중창하였다는 사실을 적지 않았지만 원성왕이 즉위한 이후의 중창에서는 자신들의 위상이 예전보다 좋아졌기 때문에 석탑기를 새겨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 결과 석탑기에는 갈항사 동, 서 삼층석탑이 758년에 세워졌다는 사실과 함께, 이 탑의 발원자가 원성왕의 외삼촌인 영묘사의 언적법사 및 원성왕의 생모와 이모가 관여하였음을 당당하게 밝혔다고 생각된다.
특징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통일신라시대의 정치변동과 불교』(국학자료원, 2002)
- 「갈항사지 동, 서 삼층석탑에 대한 고찰」(임재완, 『동악미술사학』17, 2015)
- 「삼국유사 승전촉루조의 음미」(주보돈, 『신라문화제학술논문집』34, 2013)
- 「신라 중대 말기 중앙귀족들의 불사활동」(『이기백선생고희기념 한국사학논총』, 일조각, 1994)
- 「갈항사 석탑기」(정병삼,『역주 한국고대금석문』3,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김천 갈항사 석불좌상의 고찰」(문명대, 『동국사학』16, 198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