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출토 은천명

  • 역사
  • 작품
  • 삼국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은팔찌에 새겨진 명문.
이칭
  • 이칭무령왕릉출토은천명(武寧王陵出土銀釧銘), 백제무령왕릉은천명(百濟武寧王陵銀釧銘), 백제무령왕릉출토은천명(百濟武寧王陵出土銀釧銘)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6년
  • 남무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무령왕비 은팔찌 미디어 정보

무령왕비 은팔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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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은팔찌에 새겨진 명문.

내용

무령왕릉 현실(玄室) 내부의 왕비쪽 관식(冠飾)의 하단에서 북쪽으로 35㎝되는 위치에서 쌍방거리 5㎝를 두고 금천(金釧: 금팔찌)과 함께 출토되었다. 우완에 금천, 좌완에 유명은천 각 1쌍씩이 겹쳐 나왔다. 반월형인 은띠의 표면에 혀를 길게 내민 발톱 3개를 가진 반룡(蟠龍) 두 마리를 양각하고 팔목에 닿는 내면에는 톱니 모양을 촘촘히 새겨 넣었다.

팔찌의 안쪽에 명문이 1행의 해서(楷書)로 음각되어 있다. 명문 내용은 경자년이월다리작대부인분이백삽주이(庚子年二月多利作大夫人分二百卅主耳)로 되어 있는데, 경자년 2월 다리(多利)가 만들다. 대부인(大夫人)의 것으로 230주(主)가 사용되었다로 번역된다. 이러한 명문 내용에 의하면 무령왕 20년(520) 왕비가 돌아가기 6년 전에 왕비용으로 만들어진 팔찌임을 알 수 있다.

팔찌의 제작자로 나오는 다리(多利)는 이름을 알 수 있는 삼국시대 예술가 가운데에서 최고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리(多利)는 일본 법륭사 삼존불의 제작자인 지리(止利)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리(止利)는 다리(多利)가 속한 백제의 공장(工匠) 집안에서 나온 후손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소개된 대부인(大夫人)은 왕비(王妃)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왕비 지석의 ‘태비(太妃)’라는 용례와는 구별된다. 또한 경자년이월다리작(庚子年二月多利作)이라고 새겨져 있는 명문의 문장 어순을 국어적인 것으로 보고, 백제에도 이두문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참고문헌

  • - 「상고시대에 있어서 차자표기법의 발달」(남풍현, 『구결연구』 16, 2006)

  • - 「무령왕릉 출토 명문들에 대한 어학적 고찰」(권인한, 『구결연구』 17, 2006)

  • - 「백제의 문자 생활」(정재영, 『구결연구』 11, 2003)

  • - 「무령왕릉 출토 은천명」(김영심,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1,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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