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원종은 804년(애장왕 5) 3월 신광부인(信廣夫人)의 시주로 이루어졌다. 종은 고시산군(古尸山郡)의 인근(仁近) 대나마와 자초리(紫草里)가 시주하여 만든 예전의 종(무게 280정)과 선림원에 전해오던 옛 종(무게 220정)을 모아 새로 큰 종을 조성한 것이다. 발원한 뜻은 법계의 모든 중생이 불도를 이루는 것이다.
이 불사는 상좌를 맡은 영묘사의 일조(日照)화상을 비롯하여 승려 원은(元恩)이 주관하였다. 종을 만든 백사(伯士)는 선림원의 승려 각지(覺智)가, 유나는 동열(同說)이 맡았다. 또 순응(順應)화상을 비롯한 여러 고승들이 상화상(上和上)으로 참여하였다.
한편 고시산군은 지금의 충북 옥천으로 처음 인근 대나마가 종을 시주한 절은 애장왕대 이전에 폐사(廢寺)되었다고 여겨진다. 이는 신라시대에도 다수의 사찰들이 일률적으로 성장하기 보다는 쇄락도 함께 일어났음을 알려준다.
804년 조성된 선림원종은 1948년 양양 선림원지에서 발굴된 다음해 오대산 월정사로 옮겨 보관되었다. 불행히 6.25전쟁으로 파손되어 파편의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었는데, 근래에 국립춘천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발굴당시의 보고에 따르면, 종은 높이 96㎝·구경 68㎝로, 종신(鐘身)의 내부에 이두로 된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