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돈 ()

불교
개념
원만한 이치를 단박에 깨달아 증득함을 의미하는 불교교리.
목차
정의
원만한 이치를 단박에 깨달아 증득함을 의미하는 불교교리.
내용

원돈(圓頓)은 원만한 이치를 단박에 모두 갖춘다[圓滿頓足]는 뜻이다. 즉 원만한 이치를 원만하게 갖춰진 마음으로써 단박에 속히[頓速] 깨달아서 부처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중국 천태종에서는 『법화경』이나 『화엄경』을 비롯한 일체의 불교 경전에 설해진 원만한 가르침을 원교(圓敎)라고 하였다. 특히 『법화경』에서는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알 수 있는 불지견(佛知見)의 내용으로서 제법실상(諸法實相)이 설해져 있다. 제법실상이란 모든 존재가 그 자체로 진실한 모습이라는 뜻이다. 천태 지의(天台 智顗)는 이러한 법화일승(法華一乘)의 교의에 근거하여, 원돈의 가르침을 폈다. 즉, 제법이 실상이므로, 각각의 중생이 진실한 모습이며 원만한 이치를 구족(具足)하고 있음을 단박에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중생의 한 생각[一念]에 삼천(三千)의 일체법을 갖추고 있으므로 ‘원만(圓滿)’이라 하고, 삼천의 제법이 중생의 한 생각 가운데 모두 융화되어 있음을 ‘원융(圓融)’이라 한다. 수행자는 처음 수행을 시작할 때부터, 낱낱의 현상이 중도(中道)이며 중생과 부처가 다르지 않다는 제법실상을 관찰하여[觀], 일체의 지혜를 한 마음에 갖추어 빨리[頓速] 모든 공덕을 갖추어 궁극의 깨달음을 얻으므로, 그것을 원돈일승(圓頓一乘)이라 한다.

천태 지의의 스승인 남악 혜사(南嶽慧思)는 ‘반야는 차제이고, 법화는 원돈이다’라고 하며, 불교의 수행 방법을 점차(漸次)·부정(不定)·원돈의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지의는 그것을 계승하여 점차지관·부정지관·원돈지관의 삼종지관을 건립하였다. 그 중 원돈지관(圓頓止觀)에 대하여 강설한 것이 『마하지관(摩訶止觀)』이다. 원돈지관은 줄여서 원돈관(圓頓觀) 또는 원관(圓觀)이라고도 한다. 지관을 닦을 때, 점차적으로 단계를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곧바로 실상을 대상으로 삼아 행하여, 결국 실상 외에 따로 얻을 법이 없음을 통달하는 것을 말한다.

『마하지관』 권1 상에 이렇게 설한다. “원돈지관이란, 처음부터 존재의 실상을 대상으로 삼으니, 어떠한 경계도 그대로가 중도이어서 진실 아님이 없다. 법계를 대상으로 하여 한결같이 법계를 사유하니, 한 빛깔 한 향기가 중도 아님이 없다. 자신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 중생의 세계 또한 그러하다. 오온, 십이처가 모두 그와 같아서 버려야 할 괴로움[苦]이 없고, 무명과 번뇌가 그대로 깨달음[菩提]이어서 끊어야 할 괴로움의 원인[集]도 없다. 치우침과 삿됨이 모두 중도이며 바른 견해이니 닦아야 할 수행[道]도 없으며, 생사가 그대로 열반이니 증득해야 할 괴로움의 소멸[滅]도 없다. 괴로움도 없고 괴로움의 원인도 없으므로 세간이 없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고 괴로움의 소멸도 없으므로 세간을 벗어남도 없다. 오로지 하나의 실상(實相) 뿐이어서, 실상 외에 다시 다른 법은 없다. 법성의 고요함을 지(止)라 하고, 고요하되 항상 비춤을 관(觀)이라고 한다. 비록 처음과 나중을 말해도 둘이 없고 다름이 없다. 이것을 원돈지관(圓頓止觀)이라고 한다[圓頓者, 初緣實相, 造境卽中, 無不眞實. 繫緣法界, 一念法界, 一色一香, 無非中道. 己界及佛界·衆生界亦然, 陰·入皆如, 無苦可捨. 無明塵勞卽是菩提, 無集可斷. 邊邪皆中正, 無道可修. 生死卽涅槃, 無滅可證. 無苦無集, 故無世間, 無道無滅, 故無出世間. 純一實相, 實相外更無別法. 法性寂然名止, 寂而常照名觀. 雖言初後, 無二無別, 是名圓頓止觀].”(T.46, 1c-2a)

『마하지관』에서는 원돈지관의 근거로서 『화엄경』제5 「현수품(賢首品)」의 게송을 인용하였다. “(처음 발심한) 보살은 원만한 법[圓法]을 듣고, 원만한 믿음[圓信]을 일으키고, 원만한 행[圓行]을 세우고, 원만한 계위[圓位]에 머무르며 원만한 공덕[圓功德]으로 자신을 장엄하며, 원만한 힘과 작용[圓力用]으로써 중생을 건립한다.”(T.46, 2a) 즉, 이 게송에서는 초발심의 보살이 듣는 법도 원만하며, 믿음·실천행·증득하는 계위· 갖추는 공덕 그리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작용까지 모두가 원만함을 노래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원돈의 실천법을 행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 밖에, 화엄종이나 밀교(密敎) 등에서도 역시 원돈을 설한다. 화엄종에서, 일체법은 하나와 여럿이 서로 다름없으며[相卽] 서로 내포한다[相入]고 하거나, 각각의 현상이 서로 걸림 없으며[事事無礙], 겹겹이 서로 내포함이 끝없다[重重無盡]고 하는 등이 모두 원교[圓]를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계위에 일체의 계위를 거둔다[於一位攝一切位]거나 처음 발심할 때 곧 정각을 이룬다[初發心時便成正覺] 등은 돈(頓)의 뜻이다. 밀교에서, 일체법이 모두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체덕(體德)이라거나 범부나 성인이 모두 비로자나(毘盧遮那)의 마음 안에 머문다는 등이 곧 원(圓)의 뜻이며, 이 이치를 증득하면 부모님께 받은 몸으로 곧 대각위(大覺位)를 얻는다고 함은 돈(頓)의 뜻이다.

의의와 평가

원돈은 중국 천태종 및 화엄종, 밀교(密敎) 등 여러 종파에서 강조하는 가르침이다. 우리의 불교사에서도 원돈을 찾는 것은 낯설지 않다.

신라의 원효는 『법화경』과 『금강삼매경』은 분량의 많고 적음에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일승(一乘)의 법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금강삼매경론』에서 일승에 의거하여 일미관행(一味觀行)의 실천론을 펼쳤다. 관(觀)은 삼매를 닦음이고 행(行)은 중생 교화의 실천이므로, 일미관행이란 삼매의 수행과 중생의 교화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또, 깨달음에 있어서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이 둘이 아니므로 그것을 일각(一覺)이라고 이름하였다. 그러므로 원효에게 있어서 일승(一乘)과 일미(一味)는 원교(圓敎)의 다른 이름이며, 일각과 일행(一行)은 곧 돈각(頓覺)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고려 보조 지눌의 저술 가운데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이 있다. 여기서 원돈이란 원돈교(圓頓敎)의 줄임말로서, 원(圓)이 곧 돈(頓)이라는 『화엄경』의 사상에 의하여 성불의 이치를 밝히고 있다.

참고문헌

『마하지관(摩訶止觀)』(대정신수대장경[대정장] 46)
『천태지관이란무엇인가』(오지연,연기사, 2015)
『천태불교학』(이영자, 해조음, 2006)
「원효의 실천행」(김상현, 『원효학연구』 제5집, 경주: 원효학연구원, 2000)
『佛光大辭典』(佛光大藏經編修委員會 編, 台灣: 佛光出版社,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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