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 11781234)이 창건했다고 알려져 왔으나 백제 무령왕 14년(514) 6월 가규(可規) 스님이 창건했다는 내용의 상량기(上樑記)가 발견되었다. 이에 따르면 절의 창건 시기가 신라 혜공왕 때 혜린(慧璘) 선사가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는 현재의 송광사보다 약 250년 앞선다. 일명 서암(西庵)이라고도 한다. 광원암은 송광사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지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창건했다는 보조암(普照庵)을 기준으로 방위를 정했기 때문에 서암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눌 이후 송광사의 제2세 국사인 혜심이 이곳에 주석하면서 1226년 한국 선불교의 가장 중요한 문헌이 된 『선문염송(禪門拈頌)』 30권을 편찬하고 이를 널리 유포하였다고(廣遠流布) 하여 광원암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이후 수많은 큰 스님들이 주석했던 유서 깊은 암자이다. 1309년에 혜초(惠超)가 중창하였고, 1576년에 영윤(靈允)이 중건하였다. 1710년에 정열(淨悅)·시습(時習)·기향(起香)이 적취루(積翠樓)를 세웠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가, 1948년 여수·순천 10·19 사건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송광사가 소실되자 1958년 5월 3일 송광사 불사를 위한 자재를 구하기 위해 광원암은 철거되었다. 이후 빈터만 남아있다가 1992년 승려 현봉(玄鋒)이 본당과 요사를 복원해 중창하였으며, 2008년에는 적취루와 가규당을 새로 지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암자 뒤편에는 1234년에 입적한 진각국사의 사리를 모신 부도 원조탑(圓照塔)이 있고, 1823년에 조성한 후불탱화와 1879년에 조성한 지장탱화는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