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승려 생의(生義)가 주석했다고 한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 ‘생의사 석미륵(生義寺石彌勒)’조에 도중사(道中寺)에 관한 기록이 전한다. 생의가 도중사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꿈에 한 스님이 그를 데리고 남산(南山)에 올라가서 풀을 묶어 표시하게 하고, 산의 남쪽 골짜기에 와서 말하기를, “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스님께서 파내어 고개 위에 편히 묻어 주시오.”라고 하였다. 꿈에서 깨자 그는 친구와 함께 표시해 놓은 곳을 찾아 그 골짜기에 이르러 땅을 팠더니 미륵 석상이 나왔기에 이를 삼화령(三花嶺) 위로 옮겨 안치하였다. 그는 선덕여왕 13년(644)에 그곳에 절을 세우고 살았는데 뒤에 절 이름을 생의사(生義寺)라고 했다. 충담사(忠談師)가 해마다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茶) 공양을 올린 것이 바로 이 불상이라고 한다. 생의사는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의 남산 삼화령(三花嶺)에 있었다는 신라시대의 절터이며, 이곳에서 ‘경주 남산 삼화령 석조삼존불상(慶州 南山 三花嶺 石造三尊佛像)’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불상은 신라시대의 불상으로서는 유일하게 조성 유래와 시기가 문헌적으로 고증되는데 충담사의 헌다공양(獻茶供養)과 같은 불상 관련 신앙 행위를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