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일지록 ()

유교
문헌
민담 · 놀이 · 연표 · 역사와 제도 등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정리하여 기록한 유서(類書).
정의
민담 · 놀이 · 연표 · 역사와 제도 등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정리하여 기록한 유서(類書).
개설

‘속일지록(續日知錄)’이라는 제목을 감안하면 19세기 조선에서 크게 유행하였던 고염무(顧炎武)의 『일지록(日知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상숙(金相肅, 1717∼1792)·박지원(朴趾源, 1737∼1805) 등 조선 후기 문인들의 글과 『지양만록(芝陽謾錄)』 등의 문헌에서 뽑은 다양한 글들을 수록했다.

편찬/발간 경위

편자는 알 수 없고‚ 편찬 연대도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국조보감(國朝寶鑑)』에서 인용한 내용 중에 ‘순조(純祖)’라는 묘호(廟號)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순종(純宗)’을 ‘순조’로 고친 1857년(철종 8)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얼(庶孼)에 관련된 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필사자의 신분이 서얼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서지적 사항

불분권 1책의 필사본으로 본문 첫 장 오른편 하단에 ‘윤청의인(尹淸儀印)’이라는 푸른색의 장서인이 찍혀 있다.

내용

당시 사회에서 유행하던 놀이나 노래와 민담 등을 기록한 부분과 역사와 제도 등에 관해 여러 서적에서 초록한 부분 등 크게 2부분으로 구분된다. 「상희지(象戱志)」는 장기판의 형상과 각 기물이 움직이는 법을 기록한 글이고‚ 「사설(柶說)」은 윷놀이 방법을 기록한 글이다. 「영서설(影筮說)」에서는 저자가 꿈에서 배운 점법(占法)을 소개하고 이를 ‘영서(影筮)’라고 명명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이요(海東俚謠)」는 당시 민간에서 유행하던 노랫말들을 채록해 놓은 것으로‚ 2편으로 구성되었다. 첫 수는 어린애가 울 때 달래면서 불러주는 노래이고 둘째 수는 끝 말 잇기 놀이와 같이 앞에서 끝난 단어를 이어 받아 계속 부르는 동요이다. 각 편의 뒷부분에 필사자의 사적인 견해를 간략하게 기록해 두었는데, 둘째 수의 뒤에 기록된 글에서는 노래의 말이 비록 속되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을 풀어가는 방법은 고문(古文)의 음운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그 다음에는 「춘저사(春㶆詞)」, 「상사곡(相思曲)」, 「망부사(望夫詞)」, 「회오곡(悔懊曲)」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악부조(樂府調)의 시가들로 남녀 간의 연정을 노래한 시들이다. 「연표고(年表攷)」는 고조선부터 당시까지의 연대에 관하여 고증해 놓은 글인데, 첫 부분에서 중국 요(堯)임금 원년에서 명나라 홍무(洪武) 원년까지가 3,785년이고 우리나라의 단군(檀君) 원년부터 조선 태조(太祖) 원년까지가 3,785년이라는 내용을 기록하여‚ 조선이 중국과 대등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 조선 태조에서 정조대까지의 역사적 사실들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인 『지양만록』 중에서 발췌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신옹(申滃)이 지은 「조령교구정현판시(鳥嶺交龜亭懸板詩)」와 박지원이 지은 「의청소통소(擬請疏通疏)」의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호락논쟁(湖洛論爭)에 관한 내용이 간략히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논쟁에 관련이 있는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등의 이름과 호를 기재했다. 특히 “본연지성(本然之性)은 낙학(洛學)에서 주로 논하였고 기질지성(氣質之性)은 호학(湖學)에서 주로 논하였다. 낙학을 주도한 이는 외산(巍山: 李柬)이고 호학을 주도한 이는 남당(南塘: 韓元震)이다.”라고 기록했다. 납채(納采)·친영(親迎)·동뢰의(同牢儀) 등 혼인 예식에 관한 내용들도 기록되어 있는데‚ 주로 『의례(儀禮)』에서 인용했다. 그리고 『대전통편(大典通編)』에 수록된 각종 제도의 운영에 관한 내용들과 『국조보감(國朝寶鑑)』에 수록된 역사적 사실들을 인용하기도 했다.

의의와 평가

전체적으로 백과사전식 체제를 갖추고 있는데, 19세기에 유행하던 고증학풍의 영향을 반영한 문헌으로 보기 드문 독특한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문헌이다.

참고문헌

『국조보감(國朝寶鑑)』
『대전통편(大典通編)』
『매산잡록(梅山雜錄)』
집필자
오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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