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경주에 있던 태조 진전(眞殿).
개설
내용
임진왜란 때 예안 청량산으로 옮겨 무사하였던 태조 어진을 강원도 강릉에 옮겨 봉안하였다. 이를 역시 집경전으로 불렀다. 1628년(인조 6) 화원 이징(李澄)을 보내 어진을 보수한 후 다시 봉안하였다. 1631년(인조 9)에 강릉 집경전에 화재가 나 어진도 불타 버렸다. 같은 해 가을에 전주 경기전과 영흥 준원전 태조 어진을 모두 살펴본 후 준원전 어진이 한 곳도 손상된 곳이 없다고 하여 이 어진을 이모한 후 다시 강릉 집경전에 봉안하게 하였으나 병자호란으로 이루지 못하였다. 전쟁 후에도 다시 복구되지 못하였다. 1796년(정조 20)에는 경주 집경전 터에 ‘집경전구기(集慶殿舊基)’ 다섯 글자를 세운 비를 세워 태조 진전이 있던 옛 터임을 알리게 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춘관통고(春官通考)』
- 『영정모사도감의궤(影幀模寫都監儀軌)』
- 「19세기 진전 및 어진 봉안처 운영에 대한 연구」(김지영, 『장서각』 26, 2011)
- 「숙종·영조대 어진 도사와 봉안 처소 확대에 대한 고찰」(김지영, 『규장각』 27, 2004)
- 「조선왕조시대에 있어서의 진전의 발달」(조선미, 『고고미술』 165,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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