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는 1950년대에 도입된 이래 젊음과 자유를 상징해 온 청색 데님 소재의 튼튼한 바지이다. 1960년대의 영화 산업과 1970년대 청년문화는 청바지가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여가 생활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청바지를 즐겨 입게 되었으며, 1983년 교복 자율화를 기점으로 청바지 시장은 확대되었다. 1990년대에는 힙합 청바지, 고가의 수입 브랜드 청바지 등으로 다양화되었고, 2000년대에는 로라이즈 부츠컷의 청바지, 빈티지 청바지, 업사이클링 청바지 등이 등장했다.
청바지의 영어 명칭은 블루 진(blue jeans)이다. 단수형 ‘진(jean)’은 튼튼한 능직의 목면을 가리키며, 복수형 ‘진즈(jeans)’는 그 소재로 만든 바지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골드러시(Gold Rush)가 한창이었던 1853년(철종 4)경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라는 청년이 천막에 사용하던 두꺼운 데님 소재로 광부들의 작업용 바지를 만들어 판 것이 청바지의 원형이 되었다. 그 후 청바지는 작업복과 노동복으로 널리 착용되다가 1950년대에 영화배우 제임스 딘(James Dean)과 1960년대에 미국의 히피(Hippie)들이 청바지를 입으면서, 청바지는 곧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항을 상징하는 도구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에 청바지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50년대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들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그 당시 청바지는 아주 귀해서, 미군들이 입던 중고 청바지가 미군 부대 인근이나 남대문 시장, 동대문 시장 등에서 팔리는 정도였다. 또는 서울 순화동 등에서 소규모 영세 업체들이 미국의 군복을 염색하여 청바지 비슷하게 만들어 팔기도 하였다. 그러다 1970년 평화시장에 있던 옷가게 ‘제일사’(지금의 ‘뱅뱅’)가 수출하고 남은 원단으로 바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국산 청바지의 시작이 되었다.
청바지의 청색은 깊은 파란색으로, 인디고 블루(indigo blue)라고 하는 인디언들의 천연염료를 기원으로 한다. 청바지는 오랜 역사만큼 그 형태 및 종류가 다양하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실용성과 내구성을 위해 고안되어 온 특정 디테일들이 있다. 처음에 청바지에는 앞면 중앙에 단추 가리개, 양 옆에 두 개의 주머니, 뒷면 오른쪽에 한 개의 주머니가 있었다. 그 후 앞면에 작은 워치 포켓(watch pocket), 뒷면 왼쪽에 주머니를 추가하면서 다섯 개의 주머니로 구성된 청바지의 표준이 완성되었다. 또한 주머니에 장식된 구리 소재의 리벳(rivet), 허리 벨트, 옆선 등에 장식된 스티치 역시 내구성을 위해 고안된 것들이다.
1960년대의 영화 산업의 발달은 청바지를 보급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청바지를 시중에서 구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젊은이들은 국내외의 유명한 배우들이 영화 속에서 입고 나온 청바지를 구하고자 구호 물품 시장을 찾아다녔다. 1970년대가 되자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부산의 국제시장 등에서 청바지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젊은이들은 남산에서 이태원으로 넘어가는 골목 일대에 생긴 가게들에서 청바지를 사서 입거나, 신촌 일대에 있던 맞춤 바지 전문점에서 청바지를 맞추어 입었다.
청바지가 대중적으로 보편화된 것은 1970년대 말 여가 생활이 증대되면서 사람들이 야외 활동에 편한 청바지를 즐겨 입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1983년에 시행된 교복 자율화를 계기로 청바지는 청소년들의 실용적인 옷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그 영향으로 1980년대에는 ‘뱅뱅’, ‘장원’, ‘화이트호스’, ‘아라아라’, ‘빅보이’ 등의 국산 브랜드만 있었으나 ‘조다쉬’, ‘리바이스’, ‘써지오 바렌테’와 같은 해외 라이선스 브랜드들이 차례대로 출시되면서 청바지 시장은 확대되었다. 또한 1987년경에는 ‘패션 진’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컬러나 희끗희끗한 반점 무늬가 있는 감각적인 디자인의 청바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1990년대에는 1992년 가수 서태지의 독특한 옷차림이 청소년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끌면서 힙합 청바지가 유행하였다. 그리하여 거리에는 헐렁한 청바지에 벨트를 엉덩이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거리를 청소하듯 바짓단을 질질 끌고 다니는 청소년들이 늘어났다. 한편 1989년 수입 자율화 정책의 실시로 고가의 청바지 수입 브랜드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한 벌에 수십만 원이 넘는 해외 프리미엄 진이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골반 아래로 걸쳐 입도록 밑위길이가 짧고 종아리 아래를 약간 퍼지게 한 로라이즈(low rise)의 부츠컷(boot-cut) 청바지가 유행하였으며, 중고 의류의 붐을 타고 빈티지(vintage) 청바지가 인기를 모았다.
1974년 3월 29일자 『동아일보』는 「오늘날의 젊은 우상들」이라는 기사를 통해 “블루진(청바지)과 통기타와 생맥주-그것은 확실히 염색한 군복과 두툼한 사상계(思想界)와 바라크(baraque)의 막걸리가 상징하는 반(半)세대 전과 다른 풍경이다. 그들은 경쾌함을 지나쳐 경박하게 보이고 신선하다 못해 외설스럽게 느껴지며 비(非)문화적이라기보다 반(反)문화적으로까지 생각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청바지는 그 이전의 시대와 확실히 다른 문화적 표현 도구로서 1970년대 청년문화를 아우르는 상징물이었다.
청바지가 당시 젊은이들에게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성별, 연령,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다는 점이 컸다. 그와 동시에 청바지는 세계와 동시대적으로 느끼는 멋의 표현이자 타인과 나를 구별 짓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청바지는 현대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보편성과 차별성, 세대적 가치와 개인의 취향 등 다양한 시대적 가치와 욕망을 표현해 왔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환경 문제와 지속 가능성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친환경적인 공법으로 제조된 청바지, 업사이클링(up-cycling)된 청바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한 실버 세대를 위한 청바지 등과 같이 청바지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