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바지란 바지의 실루엣이 나팔(喇叭)과 같다고 해서 생긴 명칭이다. ‘판탈롱(pantalon)’이라고도 하는데, 원래 ‘판탈롱’은 프랑스어로 긴 바지라는 의미를 가지는 말이다. 따라서 나팔바지는 영어로 벨 보텀즈(bell bottoms), 플레어 팬츠(flared pants)에 해당하며, 데님 소재로 만든 경우 부츠컷 팬츠(boot-cut pants)라고 한다.
1968년에 프랑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 여성용 팬츠 슈트(pants suit)를 발표하는 등, 1960년대 후반 서구에서는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입을 수 있도록 바짓부리를 넓게 퍼지게 한 판탈롱이 유행하였다. 그것이 한국에 들어와 1970년대 전반에 걸쳐 크게 유행하였기 때문에 나팔바지와 판탈롱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
바지는 실루엣, 길이 등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나팔바지는 바지를 실루엣을 기준으로 분류한 것으로, 여성과 남성 모두 착용한다. 실루엣이 나팔 형태를 이루는 것은 모두 포함되지만, 대부분 무릎 아래로 점점 넓어지는 형태이다. 발등을 덮는 길이이며, 바짓부리의 넓이는 대개 27~30㎝ 정도가 된다.
1970년대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하의가 다양화된 시기였다. 미니(mini), 미디(midi), 맥시(maxi) 등 다양한 길이의 스커트들이 유행하였으며, 남성의 전용물이었던 바지를 여성들이 외출복으로 입는 경우가 두드러졌다. 그 흐름으로 나팔바지는 1970년대 전반에 걸쳐 바지의 길이와 폭, 소재 등이 조금씩 변화되면서 인기를 모았다. 1960년대 말에 등장한 나팔바지는 1972년경 드레이프성이 좋은 합성섬유나 신축성이 좋은 니트 소재를 사용하여, 허리에서 넓적다리 부분은 꼭 맞게 하고 무릎 아래의 퍼지는 부분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바지 밑단을 접어 올린 것도 나왔으며, 길이는 더욱 길어져 높은 통굽 구두와 함께 입었다. 그리하여 1970년대 중반에는 바짓부리가 약 50㎝까지 극도로 넓어진 것도 등장하였는데, 바지 밑단으로 거리를 쓸고 다닐 정도였다. 심지어 고등학생들까지 선생님 몰래 교복 바지의 밑단을 넓혀 입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나팔바지는 복고풍을 나타내는 주요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1993년경에는 1960년대에 미국에서 발생했던 히피(Hippie)를 새롭게 조명한 ‘뉴 히피’가 트렌드로 등장하면서 길이가 긴 베스트, 높은 통굽 신발과 함께 나팔바지를 입었다. 1997년경에는 허리선이 골반까지 내려오며, 다리 부분은 허벅지까지 꼭 달라붙고 종아리부터 약간 퍼지는 부츠컷 형태의 청바지가 유행하였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에는 과거로의 회귀를 뜻하는 복고풍 패션이 오랫동안 강세를 보였는데, 그 영향으로 촌티패션과 나팔바지가 인기를 모았다.
1970년대는 기존의 맞춤식 양장에서 대량생산된 기성복으로 대전환을 이루었던 시기였다. 그에 따라 정장보다는 평상복[casual wear] 중심의 의생활이 정착하였다. 평상복은 스커트, 팬츠, 셔츠와 같은 아이템들을 구두, 벨트, 핸드백과 같은 액세서리와 함께 입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나팔바지가 한 시대를 풍미한 데에는 나팔바지를 재킷이나 화려한 무늬의 셔츠, 어깨에 메는 큰 가방, 통굽 신발과 어울리게 입고 싶다는 당시 젊은이들의 멋을 향한 욕구가 있었다. 물론 그 멋은 대중매체의 발달로 해외와 동시대적으로 체득한 것이었으며, 그 결과 당시 젊은이들은 나팔바지, 통기타, 생맥주와 같은 1970년대를 상징하는 아이템들을 공유하게 되었다.
2015년 가수 싸이는 「나팔바지」라는 노래를 발표해서 화제를 모았다. 그가 입었던 현란한 나팔바지의 무대 의상과 “멋있진 않지만 가끔 멋지지.”라는 가사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나팔바지는 ‘촌스러운’ 과거가 ‘멋진’ 트렌드로 재탄생된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