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치마는 베트남어의 한자어 표기인 ‘월남(越南)’과 ‘치마’의 합성어이다. 통치마, 고무줄 치마라고도 한다. 월남치마는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군인을 파병하면서 사회적 관심을 모았던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에 걸쳐 일반 여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왜 월남치마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중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군이 베트남 여성들의 고유 의상을 선물로 들여 왔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는 설명이 가장 많다. 그러나 베트남 여성들의 고유 의상은 원피스 형태이기 때문에 “베트남(월남)에는 월남치마가 없다.”라고 보는 것이 맞다. 당시 한국에서 ‘월남붕어’, ‘월남뽕’과 같이 단순하거나 시시한 것에 ‘월남’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월남치마 역시 그 영향으로 생긴 명칭이라는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월남치마는 길이가 긴 통치마 형태이다. 대부분 허리에 고무 밴드를 넣어 입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잘 맞으며 편하게 입을 수도 있다. 간단한 형태라서 집에서 쉽게 만들 수도 있다. 화려한 색상의 무늬들이 들어간 소재를 사용했는데, 당시 섬유 기술의 발달로 저렴한 화학 섬유를 쉽게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에 걸쳐 월남치마는 때와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누구나 간편하게 입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면서, 도시에서 농촌에 이르기까지 크게 유행한 소위 ‘국민 치마’가 되었다. 당시 한국에는 미니스커트와 핫팬츠 등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다리를 드러내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여성과 달리 긴 길이의 월남치마는 자연스레 시골의 아낙네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후 2000년에는 KBS 2TV 미니시리즈 ‘가을동화’에서 여주인공 송혜교가 월남치마를 입고 나오면서 이 치마가 일시적으로 유행되기도 하였다.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 한국은 기성복 시대가 열렸다고는 하지만 아직 당시에는 많은 여성들이 양장점이나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따라서 월남치마가 유행한 데에는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고, 값싸게 구입도 가능한 아이템이라는 장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한편 월남치마의 유행은 획일성이 강한 서민 패션의 일면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것은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시대에 있어 가정에 국한되었던 여성들의 생활과 관련이 깊다. 한 시기에 걸쳐 한국의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월남치마였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가슴 속에 ‘추억’, ‘고향’, ‘따뜻한’, ‘어머니’를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월남치마를 공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