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72~1974년에, 현대건설이 울산에 건설한 조선소.
건립 경위
형성 및 변천
현대건설은 중동 건설에 투입되었던 장비와 인력을 활용하여 울산조선소를 건설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현대가 조선소를 완공한 후 선박을 주문받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소를 건설하면서 동시에 선박을 건조하는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방식은 현대가 세계 조선 산업의 역사상 처음 시도한 것으로 일명 ‘정주영 공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대는 이미 1971년 10월에 그리스의 해운 회사인 리바노스(Livanos)로부터 25만 9천 톤급 초대형 유조선 2척을 수주한 바 있었다.
현대건설은 공사에 착수한 지 2년 3개월 만에 70만 톤급의 울산조선소를 준공했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비슷한 규모의 조선소를 건설하는 데 4~5년이 걸렸지만 현대는 365일 돌관 작업을 통해 공사 기간을 크게 단축했던 것이다. 1974년 6월 28일에는 울산조선소 준공식을 겸해 초대형 유조선 1호선과 2호선에 대한 명명식이 시행되었다. 1호선의 명칭은 애틀랜틱 배런(Atlantic Baron), 2호선의 명칭은 애틀랜틱 배러니스(Atlantic Baroness)였다. 현대는 1974년 11월에 애틀랜틱 배런을 인도하며 세계 역사상 최초로 조선소 준공과 함께 선박 수출을 완료하는 기록을 남겼다.
울산조선소의 준공이 일단락된 이후에도 확장 공사는 계속되었다. 100만 톤급을 목표로 한 1차 확장 공사는 1975년 5월에 완료되었는데, 그 때까지 소요된 건설비는 총 1억 2,900만 달러(약 520억 원)로 경부고속도로 건설비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울산조선소의 확장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1977년에는 제4독과 제5독, 1978년에는 제6독, 1979년에는 제7독이 완공되었다. 현대그룹의 조선 사업은 처음에는 현대건설이 담당하다가 1973년 12월에는 현대조선중공업이 출범했고, 그것은 1978년 2월에 현대중공업으로 거듭났다.
현황
참고문헌
단행본
- 김효철 외, 『한국의 배』 (지성사, 2006)
- 송성수, 『한국의 산업화와 기술발전』 (들녘, 2021)
- 이경묵, 박승엽, 『한국 조선산업의 성공요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사』 (1992)
인터넷 자료
- HD현대중공업(https://www.hhi.co.kr/)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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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토목 공사에 쓰는 중량이 큰 기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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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고탄소강과 합금강을 아울러 이르는 말. 보통 탄소 이외에 첨가한 합금 원소의 이름을 앞에 붙여서 니켈강ㆍ크로뮴강 등으로 부르기도 하나, 용도에 따라 구조용ㆍ내식, 내열용ㆍ공구용과 기타의 특수 용도용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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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1970년대 말에 중동 전쟁의 발발로 수에즈 운하가 폐쇄되자 유럽이나 미국 따위로 원유를 운반하는 유조선이 대형화하면서 생겨난, 약 20만에서 32만디더블유티(DWT)의 원유를 운반할 수 있는 유조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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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토목이나 건축 따위의 공사를 시작할 때에 하는 의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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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선박의 건조나 수리 또는 짐을 싣고 부리기 위한 설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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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장비와 인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한달음에 해내는 공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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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사물이나 권리 따위를 넘겨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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