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 연작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지면에 인쇄한 사진을 게재한 『그리스도신문』의 1901년 9월 19일자에 실린 한국의 풍물 모습을 담았다. 사진 5장 모두가 1900년 경 한국의 여러가지 풍물 즉 가마를 메고 가는 장면, 관복을 입고 고목나무 옆에 기대 있는 무관의 모습, 어린 소년 행상, 농가 풍경 등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신문』이 사진을 처음 게재했을 때 인쇄 방식은 목판이었다. 목판 인쇄는 먼저 화가가 원본 사진을 보고 나무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려놓으면, 목판사가 그림을 따라 마치 도장을 파는 것처럼 새긴다. 그런 다음 활자로 배열한 본문의 기사와 목판에 새긴 사진을 먹으로 찍는 과정을 거쳐 지면을 만든다. 이 신문의 목판을 이용해 초상사진에서부터 풍경, 건물, 산업시설 등을 촬영한 사진들, 세밀한 작업이 필요한 사진도 제작해 지면에 게재했다.
『그리스도신문』은 「대한즉경도」를 게재하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 기사를 덧붙였다.
“이 그림은 대한 풍속과 즉경인데 이러한 것이 날마다 대한 사람의 눈앞에 있으나 같다. 이같이 사진하여 공교히 판에 삭일 수 없도다. 이번에 빈돈 의원이 본국에 들어가실 때 사진을 가지고 가서 판에 삭여 온 것이니 하나는 여인이 보교 탄 것이오, 하나는 엿 장사 아이요. 하나는 지계에 지고 다니며 파는 천근 장사요. 하나는 전자 나무 아래 서 있는 양반이요, 하나는 모군꾼들과 짐 싣는 소라.”
여기에 게재된 사진들 중에는 개항기 한국의 사진을 많이 찍은 언더우드[元杜尤, 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의 『상투와 함께 한 한국의 15년[Fifteen years among the top knots life in Korea]』에 실린 것도 있는데, 이런 사례로 보면 언더우드가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신문』은 목판, 석판, 동판을 이용한 망판 방식의 인쇄 등 다양한 이미지 인쇄 방법을 적용해 사진과 그림 등의 이미지를 지면에 실었다.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신문의 성격 상 대부분 종교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한국인들에게 서구의 과학기술을 소개하는 사진들을 게재해 했다.
예를 들면 1901년부터 1902년 사이에 게재된 「철로도」, 「철로탑도」, 「증기선도」, 「추수하는 마차」 등은 당시의 첨단 과학기술을 시각적으로 소개의 내용이었다. 서양 근대의 세계관과 힘을 전하면서 계몽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이었다. 또 호외 발행의 성격으로 오늘날의 포스터처럼 유명 인물의 사진을 인쇄한 특별각판을 제작해 독자들에게 배부하기도 했다. 창간 기념으로 배포한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어진(御眞)과 한국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청나라 대신 이홍장(李鴻章) 등의 인물사진 판각이 대표적이다. 「대한즉경도」는 전국 각지에 산재한 한국인의 생활상과 풍물을 외국인과 지방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촬영한 사진이었다.
「대한즉경도」는 『그리스도신문』이 한국의 풍물과 한국인의 생활상을 촬영하여 게재한 다섯 장의 사진으로 구성한 연작이다. 외국에서 촬영한 사진을 구해 서구의 여러 풍물과 첨단 기술 분야를 소재로 했던 대부분의 사진과는 달리, 매우 드물게 풍속과 생활상을 소재로 삼고 있어, 19세기 초 한국인의 생활 환경에 대한 중요한 시각적 정보를 오늘에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