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경상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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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상감영지는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 감영이 있던 자리이다. 발굴조사 결과 중심 건물인 선화당과 징청각은 1601년(선조 34) 건립 후 위치가 바뀌지 않은 것이 밝혀졌으며, 기타 유구와 유물들을 통해서는 감영의 입지와 규모가 확인되었다.
대구 경상감영지 (大邱 慶尙監營址)
대구 경상감영지는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 감영이 있던 자리이다. 발굴조사 결과 중심 건물인 선화당과 징청각은 1601년(선조 34) 건립 후 위치가 바뀌지 않은 것이 밝혀졌으며, 기타 유구와 유물들을 통해서는 감영의 입지와 규모가 확인되었다.
측우기는 세종 때 발명되어 사용한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우량 측정기구이다. 1440년(세종 22)을 전후하여 발명되어 1442년부터 20세기 초 일제 통감부에 의해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될 때까지 조선 왕조의 공식적인 우량 관측기구로 사용되었다. 현대의 우량계에 해당한다. 금속제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다.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서울의 천문관서와 지방의 관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을 관측하고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어 기록을 보유했다. 첨성대, 금속활자, 한글 등과 함께 한국사의 빛나는 과학적 성취로 평가된다.
측우기 (測雨器)
측우기는 세종 때 발명되어 사용한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우량 측정기구이다. 1440년(세종 22)을 전후하여 발명되어 1442년부터 20세기 초 일제 통감부에 의해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될 때까지 조선 왕조의 공식적인 우량 관측기구로 사용되었다. 현대의 우량계에 해당한다. 금속제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다.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서울의 천문관서와 지방의 관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을 관측하고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어 기록을 보유했다. 첨성대, 금속활자, 한글 등과 함께 한국사의 빛나는 과학적 성취로 평가된다.
『청하현읍지』는 1832년 경상도 청하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경상감영에 보고한 읍지이다. 1책 16장의 필사본이며, 국립대구박물관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실었으며, 본문은 고을의 역사와 지리, 인물, 통계 및 조사 자료 등으로 구성하였다. 이 밖에 청하현에 대한 읍지로는 1871년의 『영남읍지』와 1878년의 『읍지』에 실린 것을 포함하여, 1899년에 보고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 『청하현읍지』와 1899년 말 경상북도 관찰부에 보고한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도서 『청하현읍지』 등이 전한다.
청하현읍지 (淸河縣邑誌)
『청하현읍지』는 1832년 경상도 청하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경상감영에 보고한 읍지이다. 1책 16장의 필사본이며, 국립대구박물관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실었으며, 본문은 고을의 역사와 지리, 인물, 통계 및 조사 자료 등으로 구성하였다. 이 밖에 청하현에 대한 읍지로는 1871년의 『영남읍지』와 1878년의 『읍지』에 실린 것을 포함하여, 1899년에 보고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 『청하현읍지』와 1899년 말 경상북도 관찰부에 보고한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도서 『청하현읍지』 등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