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경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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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찬은 조선시대,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종6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면서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수찬 (副修撰)
부수찬은 조선시대,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종6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면서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응교는 조선시대, 홍문관에 설치된 종4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응교직과 함께 국왕의 사명(辭命)을 제작하는 예문관 응교직을 겸대하였으며 그만큼 문장에 능해야 하였다. 1456년(세조 2)에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에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응교 (副應敎)
부응교는 조선시대, 홍문관에 설치된 종4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응교직과 함께 국왕의 사명(辭命)을 제작하는 예문관 응교직을 겸대하였으며 그만큼 문장에 능해야 하였다. 1456년(세조 2)에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에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찰리사는 조선시대 3품 당상관이 왕명을 받들고 외방에 파견된 사신의 명칭이다. 고려 말 조선 초기에는 국왕의 명을 받들어 외방에 파견된 다양한 사신의 명칭 가운데 하나였으나, 관계 중심의 관료제가 운영되면서 성종 대 이후에는 3품 당상관 외방 사신을 일컫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의 찰리사는 원칙적으로 3품 재상이 군무를 맡아 외방에 나가는 사신을 일컫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찰리사 (察理使)
찰리사는 조선시대 3품 당상관이 왕명을 받들고 외방에 파견된 사신의 명칭이다. 고려 말 조선 초기에는 국왕의 명을 받들어 외방에 파견된 다양한 사신의 명칭 가운데 하나였으나, 관계 중심의 관료제가 운영되면서 성종 대 이후에는 3품 당상관 외방 사신을 일컫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의 찰리사는 원칙적으로 3품 재상이 군무를 맡아 외방에 나가는 사신을 일컫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