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구려_부흥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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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은 보덕국왕 안승이 신라 왕경으로 떠난 뒤 남아 있다가 684년 반란 모의 발각으로 처형된 고구려 유민이다. 대문의 죽음을 목격한 보덕성민들은 관리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 진압 이후 보덕성민들은 남쪽 주군으로 사민된다.
대문 (大文)
대문은 보덕국왕 안승이 신라 왕경으로 떠난 뒤 남아 있다가 684년 반란 모의 발각으로 처형된 고구려 유민이다. 대문의 죽음을 목격한 보덕성민들은 관리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 진압 이후 보덕성민들은 남쪽 주군으로 사민된다.
고연무는 고구려 부흥군의 지휘관으로, 보덕국의 대장군을 지냈다. 670년 3월 신라의 사찬 설오유와 함께 각각 정병 1만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옥골까지 진격하였고, 4월 말갈 및 당의 군대와 전투하였다. 680년 보덕국의 태대형 대장군으로 안승의 표문을 신라 문무왕에게 전달하였다.
고연무 (高延武)
고연무는 고구려 부흥군의 지휘관으로, 보덕국의 대장군을 지냈다. 670년 3월 신라의 사찬 설오유와 함께 각각 정병 1만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옥골까지 진격하였고, 4월 말갈 및 당의 군대와 전투하였다. 680년 보덕국의 태대형 대장군으로 안승의 표문을 신라 문무왕에게 전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