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고려_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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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장성은 고려 초기에 여진족 등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여 압록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북쪽 변경에 쌓은 장성이다. 11세기 초 거란족과 여진족의 군사적 압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압록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북쪽 변경에 쌓았다. 길이가 1천 리라고 하여 ‘천리장성’으로 불렸으며, 고려장성(高麗長城)으로 인식되었다. 거란, 여진, 몽골 등 북쪽으로부터의 외적 침입 위협이 상존하였던 고려시대에 군사적 방어에 크게 기여한 대표적 관방 시설이다.
천리장성 (千里長城)
천리장성은 고려 초기에 여진족 등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여 압록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북쪽 변경에 쌓은 장성이다. 11세기 초 거란족과 여진족의 군사적 압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압록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북쪽 변경에 쌓았다. 길이가 1천 리라고 하여 ‘천리장성’으로 불렸으며, 고려장성(高麗長城)으로 인식되었다. 거란, 여진, 몽골 등 북쪽으로부터의 외적 침입 위협이 상존하였던 고려시대에 군사적 방어에 크게 기여한 대표적 관방 시설이다.
평로진은 고려 전기 1001년(목종 4)에 북계(北界) 지역에 설치한 진(鎭)이다. 이후 1041년(정종 7) 9월에 최충(崔冲)이 다시 성(城)과 보(堡)를 쌓았고 고려 장성(長城)을 확장하였다. 이후에 평로진은 유원진(柔遠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평로진 (平虜鎭)
평로진은 고려 전기 1001년(목종 4)에 북계(北界) 지역에 설치한 진(鎭)이다. 이후 1041년(정종 7) 9월에 최충(崔冲)이 다시 성(城)과 보(堡)를 쌓았고 고려 장성(長城)을 확장하였다. 이후에 평로진은 유원진(柔遠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