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공신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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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2년 문신 김길통을 좌리공신 4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김길통 좌리공신교서 (金吉通 佐理功臣敎書)
1472년 문신 김길통을 좌리공신 4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1607년 문신 심대를 호성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심대 호성공신교서 (沈岱 扈聖功臣敎書)
1607년 문신 심대를 호성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왕신리 371에 있는 조선 초기 태종대에 김영렬에게 내린 공신교서 및 회맹록.
김영렬 좌명공신교서 및 회맹록 (金英烈 佐命功臣敎書 및 會盟錄)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왕신리 371에 있는 조선 초기 태종대에 김영렬에게 내린 공신교서 및 회맹록.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은 인조반정에 공을 세운 이중로를 정사공신 2등에 녹훈하고 내려준 공신교서와 공신 초상화이다. 199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625년에 내려진 교서와 초상으로, 교서는 세로 39.5㎝, 가로 263.1㎝이며, 초상화는 세로 169㎝, 가로 94㎝이다. 교서는 두루마리 형태이며 저지 바탕에 생견으로 배접하였다. 초상은 사모에 단령을 입고 소매 안에 손을 맞잡고 앉은 모습으로 얼굴은 약간 반측면으로 그렸다. 교서는 정사공신에 대한 대우와 포상의 규모를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초상은 17세기 공신도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 (李重老 靖社功臣敎書 및 肖像)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초상은 인조반정에 공을 세운 이중로를 정사공신 2등에 녹훈하고 내려준 공신교서와 공신 초상화이다. 199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625년에 내려진 교서와 초상으로, 교서는 세로 39.5㎝, 가로 263.1㎝이며, 초상화는 세로 169㎝, 가로 94㎝이다. 교서는 두루마리 형태이며 저지 바탕에 생견으로 배접하였다. 초상은 사모에 단령을 입고 소매 안에 손을 맞잡고 앉은 모습으로 얼굴은 약간 반측면으로 그렸다. 교서는 정사공신에 대한 대우와 포상의 규모를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초상은 17세기 공신도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공기 호성공신교서 및 초상은 1604년(선조 37) 10월에 호성공신 3등에 녹훈된 이공기에게 내린 공신 교서와 호성공신 녹훈 후 왕명에 의해 제작되고 하사된 호성공신 초상화이다. 이공기는 선조 연간에 어의를 지냈는데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공신 교서를 받고 공신 초상화가 그려졌다. 교서에는 이공기를 포함 호성공신 86명의 이름이 수록되었다. 초상은 사모에 단령을 착용하고 의자에 앉아 왼쪽 얼굴이 7/10 정도 보이는 좌안칠분면의 전신좌상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의관의 초상화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이공기 호성공신교서 및 초상 (李公沂 扈聖功臣敎書 및 肖像)
이공기 호성공신교서 및 초상은 1604년(선조 37) 10월에 호성공신 3등에 녹훈된 이공기에게 내린 공신 교서와 호성공신 녹훈 후 왕명에 의해 제작되고 하사된 호성공신 초상화이다. 이공기는 선조 연간에 어의를 지냈는데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공신 교서를 받고 공신 초상화가 그려졌다. 교서에는 이공기를 포함 호성공신 86명의 이름이 수록되었다. 초상은 사모에 단령을 착용하고 의자에 앉아 왼쪽 얼굴이 7/10 정도 보이는 좌안칠분면의 전신좌상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의관의 초상화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조선 중기 문신 김응남에게 1604년에 내려진 호성공신교서와 1753년에 내려진 증시교지이다.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선조를 호종(扈從)할 당시 김응남은 병조판서였으므로 호성공신 2등에 녹훈(錄勳)되었다. 1604년(선조 37)에 내려진 호성공신교서와 1753년(영조 29)에 내려진 증시교지는 모두 김응남의 사후에 발급된 것이다. 모두 원본으로서,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다. 호성공신교서의 경우 조선시대 공신교서의 양식 및 형태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응남 호성공신교서 및 관련 고문서 (金應南 扈聖功臣敎書 및 關聯 古文書)
조선 중기 문신 김응남에게 1604년에 내려진 호성공신교서와 1753년에 내려진 증시교지이다.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선조를 호종(扈從)할 당시 김응남은 병조판서였으므로 호성공신 2등에 녹훈(錄勳)되었다. 1604년(선조 37)에 내려진 호성공신교서와 1753년(영조 29)에 내려진 증시교지는 모두 김응남의 사후에 발급된 것이다. 모두 원본으로서,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다. 호성공신교서의 경우 조선시대 공신교서의 양식 및 형태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1604년 무신 김양보를 호성공신 3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김양보 호성공신록 (金良輔 扈聖功臣錄)
1604년 무신 김양보를 호성공신 3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