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이공기 호성공신교서 및 초상은 1604년(선조 37) 10월에 호성공신 3등에 녹훈된 이공기에게 내린 공신 교서와 호성공신 녹훈 후 왕명에 의해 제작되고 하사된 호성공신 초상화이다. 이공기는 선조 연간에 어의를 지냈는데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한 공으로 공신 교서를 받고 공신 초상화가 그려졌다. 교서에는 이공기를 포함 호성공신 86명의 이름이 수록되었다. 초상은 사모에 단령을 착용하고 의자에 앉아 왼쪽 얼굴이 7/10 정도 보이는 좌안칠분면의 전신좌상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의관의 초상화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정의
1604년(선조 37) 10월에 호성공신 3등에 녹훈된 이공기에게 내린 공신 교서와 호성공신 녹훈 후 왕명에 의해 제작되고 하사된 호성공신 초상화.
개설
내용
초상은 사모(紗帽)에 단령(團領)을 착용하였고, 소매 안에서 두 손을 맞잡아 공경을 나타내는 공수자세(拱手姿勢)를 취하였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 왼쪽 얼굴이 7/10 정도 보이는 얼굴방향)의 전신좌상(全身坐像)이다.
관복의 가슴에는 기러기와 구름 문양이 장식된 운안흉배(雲雁胸背)가 부착되었으며, 종2품 관리가 관복이나 조복에 띠던 학정금대(鶴頂金帶)를 착용하고 있어 당시 이공기의 품계가 종2품 관원인 것으로 확인된다. 단령은 깃이 깊게 파이지 않고 단령의 아래 트임 사이로 붉은 첩리(帖裏: 상의와 하의를 따로 구성해 허리에서 연결한 형태의 겉옷)와 녹색 안감이 드러난다. 화폭의 오른쪽 의자 손잡이 위로 세모꼴의 무(웃옷의 양쪽 겨드랑이 아래에 덧댄 부위)가 보여 17세기 전반 초상화의 특징을 보인다.
얼굴은 담홍색의 옅은 색조로 안색을 표현하고 윤곽선과 이목구비는 약간 짙은 색의 선으로 나타내었다. 코 부분은 음영을 넣지 않고 필선으로만 표현하였다. 뺨과 법령(法令: 얼굴의 양쪽 코 끝에서 입술 가에 이르는 부위) 부분의 주름 역시 약간 짙은 색의 필선으로 표시하고 선염을 넣지 않았지만 얼굴의 튀어나온 부위에는 붉은 기를 살짝 칠해 입체감을 표현하였다. 수염은 흑백 필선을 섞어 그렸는데, 그다지 공들이지 않고 곧은 선으로 그렸고 입술색 역시 옅게 처리하였다. 옷 주름은 굵기가 고른 필선으로 묘사하였으며, 선염으로 옷감의 질감이나 주름의 굴곡을 표현하지 않아 조선 초기 공신상의 화법을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징
현황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 한계영당(韓溪影堂) 에 봉안되었는데, 교지(敎旨), 교첩(敎牒) 등 36점의 고문서와 함께 제천시에 기증되었다.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지만, 전문적인 보수를 거쳐 제천의병전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또한 나중에 채색을 더하거나 보수한 흔적이 없어 1604년(선조 37)에 제작된 호성공신상의 원본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제작 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지는 이공기 초상은 당시의 초상화 제작의 양상은 물론, 양식적 특징을 파악하는 기준이 되며 복식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참고문헌
- 『조선의 공신』(한국학중앙연구원, 2012)
- 『제천 한방의 역사와 이공기』(조선미, 세명대학교지역문화연구소, 2007)
- 『한국복식문화사전』(김영숙 편저, 미술문화, 1999)
- 「조선중기『녹훈도감의궤』와 공신화상에 관한 연구」(권혁산,『미술사학연구』266, 2010)
- 「조선중기 공신화상에 대한 연구」(권혁산,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07)
-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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