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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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한인장로교회는 1919년 미국 캘리포니아 리들리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교회이다. 6~7마일 떨어진 다뉴바로 예배를 보러가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감리교회로 인가를 받았으나 1936년 한국 감리교단의 신사참배 결정에 반대하며 장로교회로 변경하였다. 매년 3.1절 기념식 개최, 한인 아동의 국어교육, 민중기도회, 순국선현기념식, 국치기념식 등을 개최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78년에 팔려 지금은 연합 오순절교회가 되었다. 미주 독립운동의 요람지로 다뉴바·델라노 한인교회와 함께 미국 중가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리들리 한인장로교회 (Reedley 韓人長老敎會)
리들리 한인장로교회는 1919년 미국 캘리포니아 리들리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세운 교회이다. 6~7마일 떨어진 다뉴바로 예배를 보러가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감리교회로 인가를 받았으나 1936년 한국 감리교단의 신사참배 결정에 반대하며 장로교회로 변경하였다. 매년 3.1절 기념식 개최, 한인 아동의 국어교육, 민중기도회, 순국선현기념식, 국치기념식 등을 개최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78년에 팔려 지금은 연합 오순절교회가 되었다. 미주 독립운동의 요람지로 다뉴바·델라노 한인교회와 함께 미국 중가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김형제상회는 1921년경 미국 중가주 리들리시에 김호와 김형순에 의해 설립된 회사이다. 김형순은 1903년 최초의 미국 이민자가 하와이로 갔을 때 통역관 겸 인솔자가 되었으며, 1916년부터 리들리에 정착, 묘목회사를 설립하고 과수원도 경영하였다. 김형제상회는 김형순이 김호와 동업으로 설립한 회사로 털없는 복숭아 신품종인 넥타린 개발하고 묘목과 과일을 판매해 성공을 거두었다. 김형제상회는 한인사회를 발전시키고 대한인국민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들은 독자적 경제기반을 갖는 부업형 독립운동가로서 조직을 중시하는 총무형 지도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형제상회 (金兄弟商會)
김형제상회는 1921년경 미국 중가주 리들리시에 김호와 김형순에 의해 설립된 회사이다. 김형순은 1903년 최초의 미국 이민자가 하와이로 갔을 때 통역관 겸 인솔자가 되었으며, 1916년부터 리들리에 정착, 묘목회사를 설립하고 과수원도 경영하였다. 김형제상회는 김형순이 김호와 동업으로 설립한 회사로 털없는 복숭아 신품종인 넥타린 개발하고 묘목과 과일을 판매해 성공을 거두었다. 김형제상회는 한인사회를 발전시키고 대한인국민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들은 독자적 경제기반을 갖는 부업형 독립운동가로서 조직을 중시하는 총무형 지도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호는 일제 강점기 때,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장학사업을 펼쳤으며 해방 이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한인사회를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1884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에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후원하기 위해 노동사회개진당을 조직하였다. 1921년 복숭아 재배와 신품종 개발로 부자가 되어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장학사업을 펼쳤다. 광복 후 귀국하여 민주독립당과 민족자주연맹을 결성하였으나 이승만이 집권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한인사회를 이끌었다.
김호 (金乎)
김호는 일제 강점기 때,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장학사업을 펼쳤으며 해방 이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한인사회를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1884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에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후원하기 위해 노동사회개진당을 조직하였다. 1921년 복숭아 재배와 신품종 개발로 부자가 되어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장학사업을 펼쳤다. 광복 후 귀국하여 민주독립당과 민족자주연맹을 결성하였으나 이승만이 집권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한인사회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