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2월 전성룡의 집에서 남감리교 순행 전도사 임정구(任正九)를 초빙해 한인들이 예배를 보기 시작하였고, 1922년 3월 26일 리들리한인감리교회라는 이름으로 남감리교 선교부의 정식 인준을 받았다. 1936년 한국의 감리교단이 신사참배를 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반발해 장로교단으로 변경하였다.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로 이주한 후, 중부 캘리포니아 지역 포도농장에서 일하던 한인들은 1910년대에는 주로 다뉴바한인장로교회에서 모여 예배를 보았다. 리들리 지역의 한인들은 다뉴바와의 거리가 6~7마일이나 되어 거리상 어려운 점이 있었으므로, 리들리 지역에도 교회가 필요하다고 여겨 리들리한인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1919년 2월 리들리 지역 전성룡의 개인집에서 남감리교 순행 전도사 임정구를 초빙해 예배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 후 김호(金乎)와 김형순(金炯淳)이 경영했던 김형제상회의 가옥을 빌려 예배를 보다가, 1922년 3월 26일 남감리교 선교부의 정식 인준을 받았다. 이 날 선정된 교회 임원은 윤병구, 윤병희, 이범녕, 안석중이고, 예배당은 전성룡의 주택을 계속해서 임시로 사용하기로 했다. 당시 교인은 60~70여명에 달했고, 여름과 겨울에는 백여명이나 되었다.
1938년 당시에는 리들리 지역 한인 가정이 11호이고 교인수가 50여 명이었다. 이때 김형제상회의 김호, 김형순이 기부하여 지금의 위치인 제이 스트리트(J. Street) 1408번지에 부지를 제공하였고, 1939년 교인들이 특별 기부금을 내어 건물을 신축, 3월 1일 헌당식을 거행하였다.
1936년 한국의 감리교단에서 신사참배를 결정하자 이에 반발하여 감리교단에서 장로교단으로 변경하였고, 1939년 4월에는 샌호킨노회(San Joaquin Presbytery)에 가입하였다.
1939년 6월 20일 리들리한인장로교회 법인 인가를 청해 7월 21일 인가받았다. 1952년 12월 1일 목사관을 따로 건립하였다.
역대 교역자는 권종흡, 마준홍 전도사와 임정구, 한석원, 송헌영, 이살음, 윤병구, 이기준, 김종성, 김형일, 최중섭 목사 등이다. 장로로는 김형순, 이영수, 김응규, 조성학 등이 시무하였다.
리들리교회에서는 매년 3.1절 기념식을 개최하였는데, 1929년 3.1절 10주년을 기념하여 한석원 목사는 “앞으로 우리의 임무”라는 선언서를 통해 독립의 그날까지 한인들이 열심히 싸우자고 독려하였다.
또한 1929년에 캘리포니아 지역 한인 아동들의 국어교육을 위해 영구적인 교육기관을 조직하기로 하고, 이 지역 한인들과 각종 단체들이 참여하였는데, 여기에 리들리한인교회의 한석원 목사, 권종흡 전도사, 진영규가 기성위원으로 참여하였다.
1932년 상해사변 이후 다뉴바한인교회와 리들리한인교회 교인들이 연합으로 민중기도회를 개최하였다. 여기서 상해지역 민족 지도자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도산 안창호의 가족에게 위문서한을 보냈다.
1937년에는 중가주 지역 팔리어(Parlier), 생거(Sanger), 다뉴바(Dinuba), 델라노(Delano), 리들리 다섯 지방의 한인들이 연합으로 3.1절 기념경축식을 개최하였다. 이후 1940년대까지 기념식을 연합으로 거행하고 성금을 걷어 구제하기도 했다. 국민회 창립기념식도 리들리와 다뉴바 한인교회에서 주로 개최하였다. 이외에도 리들리교회에서는 순국선현기념식, 국치기념식 등을 개최하여 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리들리한인교회의 이살음 목사, 교인 김호 등은 1922년 북미대한인국민회에 중가주 대표로 참가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1972년부터 리들리교회 교인 수가 점차 줄어들어, 1978년 멕시코계 주민에게 팔려 지금은 연합 오순절교회(United Pentecostal Church)가 되었다.
2003년 미주이민 백주년을 맞이해서 이 교회에서 중가주 한인역사연구회, 중가주 한미재단, 중가주 애국선열유족회 등의 연합으로 매년 애국선열추모대회를 열고 있다. 교회 바로 앞 공터는 김형순이 갈 곳 없는 노인과 노동자, 한인 유학생들의 숙식을 해결해주기 위해 건립했던 한인노동자 기숙사 및 양로원 자리이다.
현재 한인교민들은 중가주에 유일하게 남은 교회이자 선조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져 있는 교회를 되찾아 보존하려는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10년 11월 13일 한국의 독립문 원형을 4분의 1로 축소한 독립문을 세웠고, 독립문 앞 광장에 애국지사 10인(이승만, 안창호, 윤병구, 이재수, 김종림, 김호, 한시대, 김형순, 송철, 김용중)의 기념비를 세웠다.
리들리한인교회는 미주 독립운동의 요람지로 독립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를 지원하였고, 한인 아동의 국어교육과 장례식·결혼식 등 한인들의 만남의 장소로서 이 지역 한인사회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구심점 역할을 했다.
기독교 예배 뿐만 아니라 3.1절 기념경축식, 국치기념식, 순국선열기념식 등 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각종 행사의 개최, 만주에 있는 한인 동포들의 구제,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상호 연결이 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이로써 다뉴바·델라노 한인교회와 함께 미국 중가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