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2월 10일 델라노 지방에 있던 한인들이 예배를 시작하였고, 6월 13일 감리사(監理師) 데이비스의 인도로 교회를 설립하였다.
중부 캘리포니아 델라노 지역에 한인들이 증가하면서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고, 델라노한인감리교회는 델라노 지역 한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1910~20년대 중부 캘리포니아 지역 한인들은 주로 다뉴바한인장로교회와 리들리한인감리교회(1936년 장로교회로 바뀜)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러다가 1930년 2월 10일 델라노 지역의 한인들이 한석원 목사를 청해 예배를 시작했고, 감리교 선교부에 연락하여 동년 6월 13일에 감리사 데이비스의 인도로 교회를 설립하였다.
1936년 3월 5일 김탁(1888-1953) 목사가 부임한 이후, 폐지된 스탁톤(Stockton) 한인 예배당 부지를 약 500달러에 구입하고 교인들의 특별헌금을 받아 그 자리에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동년 9월 6일 건축이 완료되어 헌당식을 거행하였다.
1954년 10월 1일 교회 건물을 클린턴 스트리트(Clinton Street) 1028번지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이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줄어들어 유지가 곤란해지자 1958년 6월에 델라노한인교회는 폐지되었고, 이때부터 흑인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교인수는 많을 때는 70여 명이었고, 적을 때는 10여 명에 불과하였다.
역대 교역자로는 한석원, 김탁, 이기준, 김하태, 김형일 목사가 있다.
델라노한인감리교회는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만주의 동포들을 구제하기 위해 주일학교 학생들로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전 교인들이 성금을 걷어 보냈다. 이후 1944년에도 중경 임시정부 재무부로 구제금을 보냈다.
1937년에는 중가주 지방 팔리어(Parlier), 생거(Sanger), 리들리(Reedley), 다뉴바(Dinuba), 델라노 다섯 지방의 한인들이 연합으로 3.1절 기념경축식을 다뉴바한인장로교회에서 개최하였다. 이후 1940년까지 3.1절 기념식을 연합으로 거행하고 성금을 걷어 구제하기도 했다.
1941년 2월 1일에는 국민회 중가주지방회와는 별도로 국민회 델라노지방회를 창립하였다. 이후에는 델라노지방회 주최로 하는 모든 행사와 3.1절 기념식 및 국치기념식 및 순국선열 기념식 등을 개최하였다. 또한 태평양전쟁에 참여한 한인들에게 선물을 보내 위로하기도 하였다.
1958년 6월 델라노한인감리교회는 폐지되었고, 이때부터 흑인교회가 사용하고 있다. 교회에서 7-8블럭 정도 떨어진 곳에 김탁 목사 부부를 비롯한 델라노 지역 20여명의 한인 묘소가 있다.
델라노한인감리교회는 델라노 한인사회의 구심점으로서, 기독교 예배뿐만 아니라 3.1절 기념경축식, 국민회 델라노지방회의 국치기념식 및 순국선열 기념식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하였고, 만주사변 이후 만주에 있는 한인 동포들의 구제와, 중경 임시정부 지원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이로써 다뉴바·리들리 한인교회와 함께 미국 중가주지역 한인들의 독립운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고 하겠다.